생각하며 살기, 불편하게 살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작은 일과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불편한 일에 대하여

by 월든

우리는 하던 대로 하는 게 익숙해서 편하다고 여긴다.

실제로는 더 불편한 데도 그렇다.


쿼티 자판이 대표 보기다.

쿼티 자판은 타자기의 글쇠가 엉퀴는 것을 방지하려고 일부러 느리게 치도록 만든 자판이다.
컴퓨터 자판은 엉킬 일이 없음에도 사람들에게 이 배열이 손에 익어서 지금도 쿼티 자판이 쓰이고 있다.

자판이야 손에 익고 나면 바꾸기가 쉽지는 않다.

나는 한글 자판을 두벌식에서 세벌식으로 바꾼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ㄳ, ㄼ' 같은 겹받침을 써야 할 때는 헤맨다. 내가 모자라서 그렇게지만.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쉬운 해결책이 있는 일도

우리는 하던 대로 할 때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1.

아침에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모닝페이지 3쪽을 쓴다.

노트 커버가 비닐 재질인데,

조명 빛이 반사되어 눈을 찌른다.

때때로 거슬렸지만,

집중해서 쓰다 보면 괜찮았다.

하지만 지속으로, 가끔,

거슬렸다.


커버 위에 종이 한 장을 끼우니 해결됐다.

약간의 빛 반사가 큰 일은 아니지만,

몰입을 방해할 때도 있고,

눈 건강에 좋을 것 같지는 않다.

3초면 해결될 일인데,

오랫동안 생각 없이 하던 대로 했다.


2.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식탁에 놓고 있었다.

젓가락 짝을 맞춰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렸다.

어느 날 짝 맞추는 일이 귀찮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수저 세트가 팔고 있는지 찾아봤다.

있었다.

여유 있게 샀다.

다른 모양의 젓가락들은 따로 치워두었다.

이제 젓가락 짝을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돈은 조금 들었지만,

돈보다 더 값진 시간을 아꼈다.


3.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는

노트북을 주로 쓴다.

직접 내 손에 닿는 것은 키보드와 마우스다.

오래 마우스로 일을 하면,

손목 쪽에 튀어나와 있는 콩알뼈가 아파진다.

손목 받침대를 사서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좋은 것이 있다.

운동할 때 쓰는 손목보호대다.

손목보호대가 눈에 보여서 끼고 해 봤더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손목 보호대는 비싸지도 않고,

색깔을 고를 수 있는 폭도 넓다.

좋은 하는 색을 사서 끼면 기분도 좋다.

글을 쓸 때도 유용하다.

콩알뼈 쓸림을 방지해 준다.

고정되어 있는 손목 받침대보다,

더 싸고 유용하고 가볍다.


우리에게 불편한 일이,

생각해 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민음사


난 모든 불편을 해결하고 싶은 편리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더 불편하게 살고 싶은 불편추구자에 가깝다.


만년필을 쓰는 일은 불편한 일이다.

어느 정도 쓰면 잉크를 직접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카트리지를 쓰면 해결될 일이지만,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는 일이 나는 좋다.


만년필을 쓰다가,

곧 잉크가 떨어지겠다는 감이 오면

잉크를 갈 준비를 한다.

잉크병을 연다.

만년필을 돌려서 분해한다.

피스톤을 돌려서 끝까지 올린다.

만년필을 잉크병에 넣고 잉크를 채운다.

만년필 몸체와 펜촉에 묻은 잉크를 닦는다.

뒷정리를 한다.

이 과정은 짧게 끝이 나지만,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길다.

별것 아닌 이 과정이,

꼭 명상을 한 것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잉크 충전 명상'이라고 할까.

잉크는 채워지고 마음은 비워진다.

누군가에게는 젓가락 짝을 맞추는 일이
그런 일일 수도 있겠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익숙한 일들이

조금씩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시간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

반면,

별것 아닌 것 같은 불편한 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삶을 여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얼굴만큼이나 우리 내면은 모두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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