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다치며 깨달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이야기. 당신은 그러지 마시길.
정관 수술을 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병원에서 준 지침대로,
수술 2주 뒤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4일 전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그날은 6시쯤 일어났다.
조금 피곤했지만,
추위를 이겨내고 이불 밖으로 나왔다.
작은 일을 보러 갔다가 예상치 못한 큰 일을 치렀다.
물을 한잔 마시고 달릴 준비를 했다.
6시 15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기온은 영하 10도.
아랫배가 약간 불편했다.
큰일은 덜 본 건가?
달리면서도 아랫배가 조금씩 신호를 보냈다.
반환 지점 쪽에 화장실이 있으니,
불안하지는 않았다.
반환지점에 가도 신호가 커지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그날따라 몸이 조금 무거운 느낌이 있었다.
평소에도 빠르게 달리지는 않는다.
보통 6분 대 페이스로 달리는데,
그날은 7분 대 페이스로 달렸다.
30분을 달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루틴에 따라,
샤워를 하고 모닝페이지를 썼다.
언제부터였을까?
모닝페이지에 집중해서 못 느낀 건지,
아니면 그 이후에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래쪽이 불편했다.
남자에게 구슬이 두 개 있는데,
그중 왼쪽이 많이 불편했다.
추운 날씨에 달려서 그런 건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불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몇 시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누우면 불편감은 서서히 사라졌지만,
서면 다시 찾아왔다.
조심스럽게 만져보니,
왼쪽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정상은 아님을 알았다.
비뇨기과에 바로 예약을 잡았다.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2주 동안 운동하지 말라는 지침을 지켰고,
그 후에 달리기를 꾸준히 했는데,
괜찮다가,
오늘 갑자기 이렇다고 말했다.
바지를 내리란다.
남자 앞에서 혼자만 바지를 내릴 일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비닐장갑 낀 두 손으로 만져보시더니,
'어... 초음파 찍어봐야겠는데요.' 하신다.
초음파는 아내가 찍고,
나는 화면만 봤는데,
직접 초음파를 찍게 될 줄이야.
초음파 영상을 보시더니,
염증도 생긴 것 같다고 하셨다.
러닝을 하면서 부담이 쌓이다가,
오늘 일이 터진 것 같다고 했다.
당분간 달리기는 하지 말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환자들에게 2주간 운동을 하지 말라고 설명하지만,
개인 차가 있기에 한 달 정도는 안 하는 게 좋단다.
마침 전날,
오랜만에 술도 마셨다.
딱 맥주 한 캔.
내 추측은 이렇다.
선생님의 말처럼 2주 뒤부터 시작한 운동으로
그곳에 조금씩 부담이 쌓이다가,
어제 마신 적은 양의 알코올이 그 부분을 적시고,
영하 10도 속에 거행된 달리기가 거기에 불을 붙인 게 아닐까.
정관 수술 이후
2주 동안 달리기를 쉬고,
안 먹던 아침을 먹고,
수영도, 요가도 못했는데.
다시 달리지 못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돌아와,
낙심된 마음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내는 이때다 싶었는지 나를 놀렸다.
"나처럼 운동을 안 하면, 다칠 일이 없어."
그 말이 웃겨서 반박하지 않고 잠자코 웃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애 낳으면, 난리가 났겠네."
한다.
아내는 꼰대가 확실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저녁 먹기 전 상태를 보니 갈수록 심각해진다.
주머니는 눈에 띄게 더 부어서,
내 소중이를 잠식해 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려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다른 분이 전화로는 진료가 어렵단다.
상태를 설명하니,
"지금 당장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한다.
병원으로 가면서 오디오북을 들었다.
소설, 스토너.
하필이면 스토너 몸속에서 암이 발견되는 부분이다.
두려웠다.
또다시 의사 선생님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
치과에서 입을 벌리듯,
바지를 내리는 일이 부끄럽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상태를 보시더니,
아까는 부종 같아 보였는데,
지금 상태를 보니,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피가 고인 것 같다고 했다.
그걸 혈종이라고 부른다.
부운 부위를 눌러주는 처지를 받고 다시 집으로 왔다.
그렇게 하루가 다 갔다.
다짐한 것이 있다.
병원의 지침은 최대한 보수의 마음가짐으로 지켜야겠다는 것.
1주를 쉬라고 했으면 2주를 쉬고,
보름을 쉬라고 했으면 한 달을 쉬자.
1월 1일에도 일이 있었다.
새해 첫날, 새벽 요가를 했다.
팔을 뒤로 꺾는 동작에 무리가 있었는지,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팔을 앞으로든 옆으로든 들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 때문에 2주 정도 몸을 사렸다.
겨우 괜찮아졌는데.
이번에는 아래쪽이 말썽이다.
지난주에 쓴 글 때문에 이런 말은 하기 싫지만,
'나이 탓인가?'
몇 주전에 '부상을 조심하라'는 글을 쓴 내가,
벌써 두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다시 다짐을 하는 수밖에.
첫째, 부상을 입을 정도로는 열심히 하지는 말자.
둘째, 부상을 당했다면 넉넉하게 쉬자.
일주일치 약을 받아왔다.
안 먹던 아침을 다시 먹어야 한다.
가장 사랑하는 루틴인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
그러나 더 멀리,
더 오래 달리려면 그래야 한다.
잠이라도 충분히 잘 자면서
당분간은 금욕주의자로 살아야겠다.
이런 사태가 생긴 걸 보면
나도 달리기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열악한 날에도 나는 달린다'는
거만 또는 과시였는지도 모르겠다.
수술한 지 2주가 지났더라도,
깨자마자 영하 10도의 공간을 내달리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애 둘은 낳은 아내는 무시하지만, 정관 수술도 엄연한 수술이다. 시술이 아니다!
겸손하자.
나약한 인간아.
연초가 되면 의욕이 넘치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일수록 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더 멀리 갈 수 있다.
도전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아야 하고,
더하여 다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더 오래 할 수 있다.
연초에 내 왼쪽 구슬이 나에게 준
구슬픈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하자.
... 더하는 말.
정확히 말하면 다친 건 구슬이 아니고
주머니 속 모세혈관이다.
구슬은 멀쩡할 거다.
멀쩡해도 이제 쓸모는 없다.
그래도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