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지만 중요한 3분에 관한 이야기
나는 자유를 갈망한다. 하루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인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떠올린 모습은 뜻밖에도, 아무도 없는 넓은 들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똥을 싸는 장면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유로움을 대변하기에 딱이구나 싶었다. 법과 질서를 초월한, 진정으로 자유로운 모습이 아닌가.
어린아이들은 똥과 방귀를 좋아하는 똥방귀 시절이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어린이집 저학년 시절이다. 우리 둘째가 딱 그 나이인데, 요즘 '똥꼬'라는 말에 빠져 산다. 녀석은 기저귀에 똥오줌을 가득 담고 외친다. "나는 똥꼬맨이다!" 그러고는 기저귀 갈자는 내 말을 가볍게 흘려버리고 이방 저 방을 뛰어다닌다. 엄마 앞으로 달려가서 다시 외친다. "나는 똥꼬맨이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웃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꿈꾸는 자유를 녀석이 집에서 어느 정도 실현한 거였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던 데, 창문 같기도 하다. 어른들이 볼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슬쩍 보여주는 창문. 난 둘째라는 창문을 통해 자유를 스치듯 봤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변기에 똥을 싸게 되면 격한 환호와 박수를 받는다. 금메달을 따고 받는 박수에 비할 수 있을 만하다. 부모가 보내는 환호와 칭찬에 아이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이유가, 칭찬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기저귀에 큰 볼일을 볼 때 불편한 자세로 배설물을 만들어 낸다.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움직임 없이 먼 곳을 응시한다면 중요한 일을 거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애는 주로 서서 일을 치른다. 나는 앉히고 싶다. 아들아,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하면 시원하게 잘 나와. 앉아볼까? 아이는 거부한다. 이순신 동상처럼 굳게 서서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한다. 그렇게 일을 치르면, 아이는 자기가 만들어낸 창작물을 온전히 마주할 수 없다. 작품은 기저귀 안에서 뒹굴거나 눌리고 일그러져 버린다. 그러다 처음으로 변기에 앉아 일을 치르면, 온전한 상태의 창작물을 직관하게 된다.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가. 소리는 또 어떤가. 퐁~ 하고 떨어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의 작품은 제 모양을 유지한 채로 우물 속에 안전하게 전시된다. 자기 몸으로 만들어 낸 창작물을 온전한 상태로 감상하는 기쁨에, 칭찬까지 더해지니, 기쁨이 클 수밖에.
어른들 내면에도 어린 영혼이 산다. 그렇기에 이런 창작의 기쁨을, 그것에 대한 칭찬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아내 내면에 사는 어린 존재도 이런 칭찬을 바라고 있을 터다. 아내가 큰 볼 일을 보고 만족한 표정으로 나온다면, 칭찬을 해주고 싶다. 아직은 못해봤다. 볼일 볼 때 왜 환풍기를 안 켰냐며 윽박지르기만 했다. 냄새에 민감한 나이기에, 그 정도 매너는 지켜주기를 바랐다. 생각해 보니 참 인색한 남편이다. 언젠가, 꼭 한 번만이라도, 아낌없는 박수와 칭찬을 베풀어줘야겠다.
"파이팅, 마누라! 브라보! 멋지다, 우리 마누라! 워~!"라고.
어떤 스님이 화장실 앞에 현판을 걸었다. 해우소라는 이름인데,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맞다, 화장실은 몸이 남긴 배설물을 내보내는 장소지만, 동시에 마음속 배설물까지 보내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가져가야 할 건 몸뿐이다. 그러나 내가 꼭 들고 가는 물건이 있었다. 휴대폰.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창작하는 기쁨을 느낄 겨를은 없다. 근심을 풀기는커녕,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들을 머릿속 가득 채우고 나오게 된다. 화장실은 온전히 비우는 일에만 집중할 때 빛을 발하는 장소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휴대폰 없이 홀몸으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실험.
휴대폰을 가지고 화장실에 가면 다른 문제도 생길 수 있다. 휴대폰에 집중하느라 오랜 앉아 있게 되기에 생기는 문제다. 휴대폰은 배설하는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볼 일이 끝났어도 더 앉아 있게 만드는데, 이게 치질과 변비가 생길 위험을 높인다.
치질이나 변비를 예방하면서 근심을 풀기 위해서는 시간이 중요하다. 난 마무리까지 3분 안에 해결해 보기로 했다. 3분으로 정한 건, 엄밀한 연구를 통해 얻어낸 결론은 아니다. 양치도 3분, 라면도 3분, 카레도 3분이니, 그냥 3분으로 정했다. 해보니 딱 좋은 시간이다.
오늘도 변기에 앉기 전에 타이머를 누른다. 큰 일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 3분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 창작물에 근심까지 실어 보내기 위해. 근심이 남았다 싶으면, 모이스처 핸드워시에 손을 천천히 씻고, 로션에서 올라오는 유칼립투스 향을 느끼며 남은 근심을 털어낸다.
더럽게 여겨질 수도 있는 얘기다. 그래도 중요한 얘기다. 더럽지만 중요한 얘기. 어쩌면 더럽게 중요한 얘기.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는 3분, 더구나 배설하는 시간, 가치 없어 보이는 이 시간이 내게는 소중하다. 날마다 치러야 할 일이기에 더 그렇다. 3분만 있는 건 아니다. 하루 여러 번 치러야 할 작은 일도 있으니까.
어느 날 엔제리너스에서 책을 읽다가 작은 볼일을 보러 갔다. 시원함을 느껴보자는 생각에 눈을 감고 집중했다. 쾌락은 기대보다 컸고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천천히 사라졌다. 오줌이 터져 나올 위기를 넘기는 순간에만 느껴졌던 쾌락이,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다. 실바람처럼 미세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붙잡기 어렵지만 존재했다. 집중력은 공부나 일을 할 때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에서도 집중력은 힘을 발휘한다. 집중할 때, 잠깐이나마 충분한 만족감과 쾌락을 느낄 수 있다. 약물이 주는 것 같은 크고 짜릿한 쾌락은 아닐지라도, 근심을 털어내기에는 충분한 쾌락을.
언젠가는 꼭, 넓은 들판에서 온몸으로 창작하는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 타이머도 던져두고 맨몸으로 온전히 자유에만 집중면서. 그전까지는, 작지만 뚜렷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까 한다. 언제 올지 모를 거대한 자유를 위해, 지금의 자유를 미뤄둘 수는 없으니까.
어쩌면 넓은 들판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집 똥꼬맨이 참 자유를 이미 실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