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의자는 조용히 넣고, 머문 자리는 깨끗이 닦고 떠나기

by 소로

오늘도 30분을 달리고, 스타벅스에 갔다.

흔들리지 않아 편안한 넓은 공용 테이블에 앉았다. 그 테이블은 다리가 바닥에 고정되어 있어 흔들림이 없다.

책을 읽을 때는 몰라도 글을 쓸 때는 확실한 차이가 느껴진다. 난 왼쪽 끝자리에 앉는다. 왼쪽에 벽은 없지만, 비어있는 공간이 안정감을 준다.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인 이유는, 오른쪽에 가방을 두는 게 자연스러워서다.

자리에 앉으면 쓸 물건들을 꺼내놓고 명상을 한다.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다. 커피가 나왔다는 진동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알람이 울렸나 싶어, 명상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스타벅스 세이렌이 진동으로 나를 부른다. 음료가 나왔으니 가져가라고. 따뜻한 오늘의 커피, 얼음물 컵, 티슈 두 장을 들고 와, 가방이 앉은 쪽 테이블에 둔다. 커피는 두고, 먼저 얼음물을 쭉 들이킨다. 달릴 때 빠져나간 물도 보충되고, 빠져나간 정신도 돌아온다.


짙은 초록색 A5 노트를 펼치고, 짙은 초록 잉크가 든, 짙은 초록빛 세일러 만년필로 아침일기를 쓴다.


몇 줄을 쓰다가 손이 노트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손날에 지우개 가루가 묻는다. 전에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이다. 필통, 만년필, 노트를 가방이 앉은 자리로 옮기고, 티슈 한 장으로 가루들을 떨어낸 다음, 아침 일기를 이어서 쓴다.


아침 일기 한쪽을 채우기 전에, 거의 날마다 이곳에 오는 남자가 같은 테이블 오른쪽 끝에 앉는다. 내가 단골남으로 부르는 그도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다. 말 한마디 섞어본 적은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나만의 착각일까. 적어도 나는 그의 존재를 확실히 알고 있다. 카페를 오는 길에 내가 그를 추월해서 온 적도 있다. 하루는 단골남이 조금 늦게 와서 다른 사람이 그의 자리에 앉은 적이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 일기를 다 써갈 때쯤, 여자 한 명이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건너편 가운데 자리다.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여성분이다. 카페에 낯선 사람이 온다고 자세히 보지는 않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 실루엣 만으로도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분은 냄새와 소리로 내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았다. 그에게는 섬유유연제 같은 향수 냄새가 난다. 나에게 감흥을 주는 냄새는 아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냄새 정도의 감흥이지만, 기억에는 남았다. 그의 등장을 더욱 뚜렷이 알려주는 것은 소리다. 그가 의자를 뺄 때는 요란한 소리가 난다. '드르륵!' 하고 당기는데 유난히 시끄럽다. 일부러 더 시끄럽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자가 유난히 무거웠을 것이고, 유독 그곳 바닥의 굴곡이 심했을 것이다. 타곤난 힘도 한몫을 한 것 같다. 확실한 것은 내가 들어본 가장 큰 의자 끄는 소리다.


그 소리가 더 요란스레 느껴지는 이유 하나를 더하자면, 단골남이 앉을 때와 비교가 돼서일 테다. 단골남은 조심스레 의자를 들어서 당긴다.


그분을 흉보려는 건 아니다. 잠깐 드르륵! 정도야 괜찮다고 생각한다. 유난히 시끄럽다는 인식은 있지만, 짜증 나는 감정은 없다. 도서관이 아니고 카페니까, 그 정도야 뭐. 그래도 나는 안 그래야지 싶다.


떠날 때가 되었다. 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하게, 깃털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선잠자는 강아지도 깨지 않을 만큼 조심스레 의자를 들어 넣었다. 가방을 메고, 가방이 앉았던 의자도 같은 고요함으로 들어서 넣었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정숙하게.


빈컵 두 개를 한 손에 들고, 남은 티슈 한 장으로 닦을 것도 없는 책상을 두세 번 슥슥 닦아낸다.


남들은 모를지도 모른다. 내가 의자를 조용히 넣었는지, 책상을 닦고 나갔는지,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남들을 조금은 배려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남에게 큰 도움을 주면서 살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은 것에, 다음에 이 자리에 앉을 사람에게 깨끗한 책상을 남긴 것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유난스러운 조용함과 쓸데없는 티슈 질이 그들의 신경을 더 거슬리게 했으려나?


카페를 나오는데, 뜬금없이 아내가 생각났다. 이 장면을 봤다면 분명히 했을 말도 이어서 떠올랐다.

"나를 그렇게 배려해 봐라!"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려 했지만 소용없다. 상상 속 아내의 말이 틀린 구석이 없다. 나는 콧방귀로 대답을 대신한다. 오랜만에 나를 배려심이 조금은 있는 사람의 자리에 올려놨는데, 단숨에 다시 끌어내려버리다니.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아내가 얄밉다.


몇 걸음을 걸었을 때, 책들이 너저분하게 널린 내 책상이 생각난다. 내 안에 있는 아내는 또 한마디를 거든다.

"먼지 쌓인 오빠 책상이나 닦으시죠!"

현실 속 아내와 다르게 내 머릿속 아내는 옳은 말만 한다.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다면 당장 지우고 싶다. 눈앞에 있는 아내 말은 잘 안 듣지만, 머릿속 아내말은 무시하지 못하겠다. 집에 가면 책상부터 치워야지. 내 책상을 치우는 것도 사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일이다. 내일의 나를 배려하는 일.


꽃을 꽂든 차를 내리든 식사를 준비하든 개성이 잘 드러나는 행동을 정성스럽게 할 때 자신만의 매력을 갖게 된다. 사람의 매력은 바로 행동하는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의자를 조용히 넣고 빼는 것, 머문 흔적을 깨끗이 닦고 떠나는 것, 이 두 가지 행동이 남들을 배려하겠다는 이타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도미니크 로로의 책을 읽다가 나도 작은 일을 정성껏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시작한 깨알 같은 행동이다.


이런 일들이라도 정성껏 하다 보면, 나도 나만의 매력을 갖게 될까? 별것도 아니지만, 이런 행동이라도 할 때는, 나도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아내가 머릿속에 등장하기 전까지만.


아이들은 일어났을까?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간다. 아내에게 줄 벤티 사이즈 아이스커피가 흘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집엔 똥꼬맨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