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를 보고
넷플릭스에서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Three Identical Strangers*)”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갓 대학생이 된 한 청년이 캠퍼스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체해서 의아해하던 중 갓난아기 때 입양기관에서 헤어진 다른 두 명의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재회하게 되는 내용이다.
다큐멘터리 자체는 무난한 사회고발형 르포였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뉴욕의 한 정신건강의가 80년대에 과학 연구라는 명목하에 일란성쌍둥이 고아 혈육들을 떼어내 양부모와 당사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수년에 걸쳐 성장 및 발달 과정을 연구한 아주 비윤리적인 사건으로, 피해자들이 평생 치유받지 못할 상처와 돌려받을 수 없는 시간으로 힘들게 고통받게 된 사연이다.
해당 의사는 자신이 행한 프로젝트의 그 어떠한 결과도 발표한 적이 없는데, 추측해 의하면 당시 유행하던 Nature vs. Nurture(성격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논란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결과가 나왔으나 단지 사람들의 “기대에 반하기” 때문에 미발표에 그쳤다고 한다.
어떤 기대일까? 바로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는, 그러니까 삶은 이미 결정 내려진 운명론(Determinism)이 아닌 자유 의지(Free Will)에 의해 충분히 우리 노력으로 개개인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일컫는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한계나 제약이 있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동기를 잃게 되고 만다.
실제로 다큐멘터리에는 이 시기 세 쌍둥이 말고도 똑같은 실험 피해를 입은 같은 입양기관 출신의 다른 쌍둥이들이 소개된다. 이들이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한 얘기는 바로 자신들이 얼마나 유사한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랜 세월을 떨어져 지냈지만 결국 비슷한 성격과 관심사, 생활습관 등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유전자(DNA)를 가진 일란성쌍둥이, 세 쌍둥이가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면, 네 쌍둥이, 다섯 쌍둥이 또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수의 복제된 개인이 존재해도 유전자가 같다면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와 평행이론(Parallel Life)를 생각해 보자. 나와 같은 존재가 다른 평행우주상에서 삶을 살아간다. 내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성공, 실패, 실수, 경험 등을 그들도 겪을까?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나 선택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내가 거기 가지 않았더라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걸 했더라면...'
혹은 후회가 아닌 막연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나는 행복할까?'
'또 다른 나는 사무실에 갇혀있지 않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살지 몰라.'
'또 다른 나는 인생의 공허함에 허덕이지 않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닌가. 그 말인즉슨, 거의 확실한 확률로 지금의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똑같이 돈의 노예고, 똑같이 남들을 의식하고, 똑같이 삶의 의미를 발굴 또는 발명하기 위해 생존과 실존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것이다.
똑같은 곳을 향해 가면서. 죽음을 향해 전진하면서.
끔찍한 순간을 계속 반복하는 무한 루프(Infinite Loop)에 빠져 삶을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귀여운 영화는 찾기 쉽다. 선형 시간(Linear Time)에 구속받기에 시간을 되돌려 무엇이라도 바꾸고 싶은 기대, 아마도 그게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고로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바꿀 수 없다. 그것이 평행우주에서 일지언정.
생각이 이 지경까지 이르면 퍽이나 우울감이 몰려온다. 삶의 쳇바퀴에 지쳐 평행자아들만은 행복하기를 바라며 공상이나 하는 스스로에게 위로는커녕 더욱더 실망감만 안기니 이거야 원 이번 생에 행복은 고사하고 평온함과 평정심을 찾기에는 그른듯싶다.
이전 생에도. 이후의 생에도. 수많은 평행우주의 인생들에도 획기적으로 다른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언제나처럼 식상하다. 지금의 시스템을 타파하자. 내가 처한 상황, 환경, 제약들을 넘어설 수 있는, 나의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삶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내 통제권 안에 있는 일들을 노력을 통해 개선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설사 그게 정해진 운명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자유를 믿는 망상에 기반한 것일지라도.
* 여기서 세 쌍둥이를 Triplets가 아닌 Strangers(이방인)이라고 표현한 게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