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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씨 Dec 13. 2022

제주에서 무작정 걷는 오후

팬데믹을 겪으면서 여행의 개념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전에는 꼭 멀리 해외 정도는 다녀와야 그럴듯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가까운 곳이라도 집을 떠나 며칠 휴식하고 오는 것도 나름 괜찮은 여행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여행이란,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대단한 것 없어도 평소와 다른 곳에서, 익숙하지만 어딘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오는 것이다.



보통 제주도 하면 흔히 떠올리는 섬의 동쪽이나 서귀포 쪽의 유명 관광지들은 잘 가지 않게 된다. 어쩐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서쪽 동네에서 3년째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지인이 알려준 제주시 한경면의 숙소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것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찾게 되었다. 드라마나 노래로 많이 알려진 애월읍에서 서쪽으로 한참 더 가면 있는 한경면은 최근에 소소한 음식점이나 카페, 소품 가게들이 하나씩 생겨나는 곳이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주요 관광지들보다는 그런 소박한 동네가 왠지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

또 제주도는 렌트가 필수라고 하지만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다. 주로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그러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풍경과 인상들은 차로 다닌다면 거의 놓치게 될 것들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그리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내 여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걷기다. 따로 산책 시간을 정해 놓는다기보다, 목적지와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아놓고 그사이 이동하는 시간을 걷기로 채워 넣는다.

산책이라는 말도 왠지 거창해서, 그냥 한참을 걷고 그 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정도라고 하겠다.



가끔은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데, 그러다 보니 걸을 때 듣기 좋은 음악이 저절로 추려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잔잔하면서 리듬감 있는 재즈 기타 솔로(Nuvem Negra by Fabio Gouvea)가 그날 걷던 길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 적이 있다. 인적 드문 시골길, 적당히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 모든 게 딱 맞아떨어졌다.



왠지 제주 하면 떠오르는 낮은 돌담, 누군가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싶었는지 신기한 모양으로 자라난 나무, 탁 트인 하늘과 선명한 노을, 그저 순간의 색감이 좋아 담아두고 싶었던 별것 아닌 풍경들이 행복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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