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들

영화 <리스본 마루의 침몰>

by 메밀

무료하던 어느 날, 성동문화재단에서 세계 영화 상영회 무료 초대를 신청하라는 문자가 왔다. 응? 우리 집은 성동구가 아닌데. 전에 그쪽 동네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했다가 내 연락처가 DB에 남았나 보다. 개인 정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것도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자발적 호구인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게다가 공짜 영화니까.


이번 회차는 중국 영화로, <리스본 마루의 침몰>이라는 다큐멘터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수송선 리스본 마루가 침몰한 사건을 다룬다.’라는 짤막하고 건조한 소개 글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아, 중국 영화? 부끄럽지만 중국 영화 하면 황비홍과 백발 마녀가 날아다니는 무협 영화 따위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성조 강한 중국어의 억양이 듣기 힘들다는 편협한 시각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큐멘터리라 지루할 것 같기도 했지만, ‘그냥 공짜로 교양이나 쌓지 뭐’라는 생각으로 무료 관람을 신청했다.


영화 상영일이었던 수요일 오후, 무더위에 지쳐 녹아내리던 육신을 겨우 추스르고 집을 나섰다. 영화는 7시에 시작하지만 티켓 수령은 6시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선착순으로 자리가 배정되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6시 정각에 도착하여 티켓을 받고 아래층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운 뒤, 영화 시작 20분여를 남기고 아트홀로 입장했다. 재단 직원의 짤막한 소개와 다음 행사 홍보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중국 동극도 앞바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800여 명의 영국군 포로를 태우고 가다 미 해군의 어뢰를 맞고 침몰한 뒤 아직 바닷속 깊이 가라앉아 있는 ‘리스본 마루’라는 배를 찾는 과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동극도 어민들에 의해 구조된 400여 명과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들 외에 800여 명의 영국인 젊은이가 산 채로 수장된 끔찍한 사건임에도, 리스본 마루에 대해서는 영국에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제작팀은 각종 최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리스본 마루와 일치하는 물체의 소나 이미지(수중 음파 이미지)를 얻어낸다. 심해에서 찾아낸 리스본 마루는 오랜 시간 동안 각종 해초와 수중 생물로 뒤덮였다.


일본군은 1942년 9월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빼앗고, 홍콩을 지키던 스코틀랜드 보병연대와 포병부대원들을 포로로 잡았다. 일본군은 이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기 위해 수송선 리스본 마루에 태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갑판 아래 화물칸 3개에 1,8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가축처럼 욱여넣고 가뒀다. 출항하기 전에 일본군은 영국군 포로들에게 “너희들을 아름다운 나라로 데려갈 거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나라. 일전에 누군가 어릴 적 봤던 일본의 거리는 참 ‘아름다웠다’라고 회상하던 것이 떠오른다. 제국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인가 보다.


영화는 당시 어둡고 답답한 갑판 아래의 끔찍한 실태를 약간의 애니메이션이 가미된 강렬한 이미지로 처리하였다. 그 울림이 너무 강해서, 다음 장면의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보고 싶은데, 국내 미공개작이라 기회가 다시 있을지 모르겠다.


리스본 마루에 타고 있던 일본군 800여 명은 미 해군 잠수함 ‘그루퍼’의 어뢰 공격을 받자, 포로들이 갇혀 있는 화물칸 입구를 판자에 못을 박아 막아버린 뒤, 소수의 자살 경비대만 남기고 탈출한다. 노골적으로 포로들을 배 안에 가둬 익사시키려고 한 것이다. 입구를 부수고 가까스로 갑판 위로 올라간 일부 영국군은 배에 남아있던 자살 경비대의 기관총 세례를 맞고 즉사하거나, 바다로 뛰어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아직 주변에 있던 일본군은 한 놈도 살려둘 수 없다는 듯이 쉴 새 없이 총을 쏘아대고, 구명보트로 밀어버리기까지 했다.


미 잠수함 그루퍼는 당시 이 배에 영국군 포로가 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본군이 포로 이송 중이라고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네바 협약 위반이다. 이 외에도 당시 일본군은 그러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당시 그루퍼를 지휘하던 미군 장교는 후에 자신이 격침한 일본군 수송선 밑바닥에 수백 명의 무고한 영국인 청년들이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실수로라도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죄책감에 시달려 괴로워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제작팀이 인터뷰할 수 있었던 사건 당사자는 리스본 마루에 갇혔던 영국군 2명과, 일본군의 위협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구조 작업을 벌인 동극도 어부 1명, 총 3명이다. 영국으로 살아 돌아온 후에 세상을 떠난 영국군 가족들의 인터뷰도 볼 수 있다.


생존자들. 그들을 표현할 때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기적적으로 돌아온? 아무래도 아니다. 그들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운이 좋아서 혹은 기적이 따라주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남아도 남은 인생은 온전치 않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 비명을 지르며 깨고,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 손자를 순간 일본군으로 착각하여 주먹을 휘두르고, 주변 사람들의 인생마저 마구 흔들어버리는 PTSD를 안고 살아간다.


99세의 영국인 할아버지는 전쟁이란 더럽고 끔찍한 것이라고 했다. 그 사건 이후 모든 기억을 지웠다고 했다. 전쟁이 끔찍하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는 같은 말이라도 그 무게감이 전혀 다르다.


전쟁이 어떤 것인지 나는 겪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전쟁이란 참전 군인뿐 아니라 매 순간 마음 졸이며 그저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이들의 삶을 모조리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저 함께 웃고, 울고, 행복해지고 싶은 소박한 바람도 산산이 조각내버린다.


영화 제작이 완료되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당사자들은 모두 같은 해 2020년에 눈을 감았다. 마치 이제야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이제 리스본 마루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생존자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뚝섬역 계단을 오르며 무심코 영화의 여운을 곱씹었다. 울컥 눈가가 미지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퍽퍽하기가 밤고구마 저리 가라인 나도 이렇게 만들어버린 영화의 힘을 다시 느끼며, 이것은 써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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