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그려본 짧은 만화
6월에서 7월에 걸친 5주 동안, 다소 특이한 워크숍에 참가하였다. 마포에 있는 스파인서울에서 진행한 일명 ‘어학 창작 워크숍 일본어 편.’ 일본어도 잘 못하고 만화도 그려본 적이 없지만 어쩐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바로 신청해 버렸다. 여차저차해서 최근 일본 여행을 자주 다녀오기도 했고, 막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익히기 시작한 참(이라고 하기엔 1년을 넘게 질질 끌면서 책 한 권도 끝내지 못한 상황)이라 일본어에 관한 관심이 생기고 있던 때라 호기심이 일었던 것 같다.
제목부터 너무 내 취향인 <빵 고르듯 살고 싶다>의 임진아 작가님이 손수 번역하고 출력해 온 가사를 보며 함께 노래를 감상하고, 짧은 만화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작가님이 선곡한 노래의 가사 중 일부를 발췌하거나, 뮤직비디오에 달린 유튜브 댓글을 보고 공감되는 부분이나 비슷한 경험을 2컷, 3컷의 만화로 즉석에서 그려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만화반 애들과 잠깐 친하게 지낸 적은 있지만, 살면서 만화를 그려본 적도 없고, 만화책을 본 지도 굉장히 오래되었다. 하지만 작가님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다양한 만화책도 구경하고, 만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아, 나도 그런 걸 참 재미있어했는데….’ 하면서 잊고 있던 감성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 같았다.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을 만화로 옮겨내는 작가님의 작업 과정을 보고, 내 만화를 그리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바로 만화를 그려보라니. 사실 이것저것 잡다한 분야에 넓고 아주 얕게 관심이 많아서 각종 워크숍, 클래스 등등에 무수히 참가하며 실속 없는 돈을 쓰는 어중이떠중이가 바로 나다. 무엇이든 의미 있는 결과물로 마무리하려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다들 뭔가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오는 것이 신기했다.
이번에도 뭘 가지고 만화를 그려야 하나 고민하다, 30년 넘게 우리 집에, 내 침대 위에 살고 있는 애착 인형이 떠올랐다.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는 10살 많은 큰언니가 초딩 때부터 끼고 다니던 건데 언니가 독립하면서 나에게 맡겨진(?) 아이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내가 막 걷기 시작했을 때 온 가족이 백화점에 갔는데, 큰언니는 분홍색 하마 인형을, 나는 더 작은 크기의 흰색 하마 인형을 하나씩 골랐다. 특별히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았고 큰언니 거는 큰 하마, 내 것은 작은 하마(혹은 아기 하마)라고 불렀던 것 같다. 작은언니는 혼자 삐딱선을 타고 물개를 골랐다.
딸만 셋인 집이라서인지 어릴 때부터 집에는 항상 봉제 인형이 많았다. 언니들이 사 오거나 선물 받아온 것도 있고, 한 여대에서 교직원으로 오랫동안 재직한 아빠가 학생한테 선물 받아온 것도 있었다. 수많은 인형이 한 번씩 집 안 대청소를 할 때마다 엄마의 손에 숙청되고 말았다. 내 흰색 작은 하마와 작은언니의 물개 또한 대숙청을 피해 가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그 분홍색 하마다. 어느 시점부터는 엄마도 포기한 듯하다. 살아온(?) 세월을 반영하듯 털도 많이 빠지고 여기저기 바느질한 자국도 많은 낡은 하마 인형. 더 이상 분홍색이라고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빨기도 어려워서 꼬질꼬질하지만, 털 짧은 강아지를 만질 때와 비슷한 보드라운 촉감과 끌어안았을 때 딱 좋은 토실한 양감이 이 녀석을 버릴 수 없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이랄까.
어쨌든, 언젠가 이 녀석을 주인공으로 한 짧은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었다. 워크숍 마지막 주, 무려 12 페이지짜리 단편 만화를 완성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조심성 많은 외로운 작은 하마, 오늘도 혼자 걸어가다 우연히 낯선 풍선을 하나 발견했어요. 풍선에는 기다란 실이 묶여있었는데, 실 끝이 바위틈에 껴있는 게 아니겠어요.
조심성 많은 하마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다가가서 풍선에 매달린 실을 잡고, 바위틈에서 빼냈어요. 그러자 하마의 몸이 둥실 떠올랐어요. 하마는 어쩐지 실을 놓지 않고 그대로 풍선에 매달려 날기 시작했어요.
한참 동안 하마를 데리고 떠다니다, 조금씩 바람이 빠진 풍선은 어딘가에 하마를 내려주고 다시 날아가 버렸어요. 풍선이 데려다준 곳에서 혼자 놀던 작은 돼지와 혼자 놀던 작은 강아지를 만났어요. 각자 외롭게 놀던 동물들은 서로를 만나자마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친구가 되었어요. 함께 소풍도 가고, 물놀이도 하고, 나란히 앉아 석양을 바라봤어요.
끝.
<만화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