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통영이었다

8년 지나서 쓰는 통영국제음악제 후기

by 메밀

언제인가부터 통영에 다녀오는 일이 잦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 누군가 통영국제음악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냥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덜컥 공연 3개를 예매하고, 숙소를 잡고, 월차를 내고……. 딴에는 제법 즉흥적이었다.


아마도 2박 3일의 일정이었을 거다. 난생처음 가보는 통영,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통영국제음악당은 뭔가 신선했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등에 공연을 보러 갈 때는 괜히 평소보다 더 갖춰 입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이곳 통영국제음악당을 찾는 이들은 좀 더 편한 옷차림이다. 통영을 비롯한 가까운 경남 지역 주민, 또는 더 멀리서 나처럼 짧은 여행을 겸해 음악제를 즐기러 오는 배낭족도 쉽게 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해서 괜히 엄숙하고 진지하기보다는, 집 앞 공원에 마실 나온 것 같은 편한 분위기에서도 국제적인 수준의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며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통영국제음악제의 매력인 것 같다.


첫날 개막 공연은 무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협연하는 오케스트라. 정경화라는 이름의 위력을 증명하듯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었지만, 초짜 치고는 운 좋게 2층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다. 콘서트홀 옆 레스토랑에도 예약이 꽉 찼다. 팬데믹이 닥치기 전이라, 한 무리의 독일인 아주머니들이 내 자리 옆 블록을 서성거리며 좌석 번호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도 괜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전에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 기초 ‘준비’ 과정(기초보다 더 기초인, 알파벳과 숫자 읽기부터 배우는 완전 쪼렙 과정이랄까.)을 들은 뒤라, 티켓에 적힌 번호를 중얼거리는 소리를 엿듣고 독일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나 자신도 신기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다음 과정은 영원히 듣지 못할 것 같다.)


웅성웅성 좌석 번호를 읊으며 자리를 찾는 소리와 지인을 만난 사람들이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소리, 무대 위에서 각자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가 섞인 틈에서 나도 곧 자리에 앉아 무대를 내려다본다. 수많은 악보대와 의자가 오케스트라 대형에 맞춰 나란히 늘어서 있는 사이로 연주자와 스텝으로 보이는 한두 명이 요리조리 오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 갖고 놀던 미니어처 장난감이 생각난다. 네모와 세모, 아치 모양의 나무 블록으로 작은 도시를 짓고, 작은 자동차를 건물 사이사이로 움직이며 내가 만든 작은 세계를 내려다보던 기억.


공연이 시작되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모두 무대로 입장하여 단체 인사를 할 때, 스마트폰을 들고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독일 아주머니들을 보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베토벤의 나라에서 왔는데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까 하는, 약간의 사대주의가 섞인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가 울려 퍼지며 공연이 시작된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뒤쪽의 타악기 연주자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인다. 때로는 규칙적으로, 때로는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다양한 타악기의 소리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현악기 주자들의 활이 못지않게 바쁘게 움직이며 거친 파도를 이룬다. 앞으로 교향악은 2층에서 보기로 한다.


다음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에 이어지는 순서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바로 그분이 등장하는 무대다. 그 옛날, 서구에서는 대한민국이 어디 박혀있는지도 잘 몰랐던 시절에 한국인들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던 정트리오의 그 정경화. 바이올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높은 음역의 현악기라는 것뿐이었던 문외한에게 생각보다 깊고 풍부한 소리를 가진 악기라는 것을 알려준 분, 거장은 거장인가 보다.


공연이 끝나고 로비에서는 정경화의 최근 앨범 판매와 함께 사인회가 있었다. 미리 사둔 CD에 사인까지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1층 로비에서부터 계단을 지나 2층까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진 줄에 압도되고 말았다. 숙소로 가는 버스 막차를 놓칠 수는 없어서 사인받기를 포기해 버린 것이 아직도 후회되곤 한다. 시커먼 밤길을 1시간 가까이 걸어가는 한이 있어도 받아야 했나 싶다.


둘째 날 재즈 보컬리스트 리사 피셔의 자유롭고 열정적인 공연은 흡사 종교 단체의 대 부흥회를 방불케 했고, 셋째 날 이탈리아에서 온 한 소년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은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솔로 연주를 들려주었다.


통영에서의 첫 경험은 이렇게 제법 알차게 마무리되었다. 모든 것이 그저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던 서울 촌놈은 이후로도 수없이 서울에서 통영까지 왔다 갔다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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