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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도시마 여행기를 곁들인

by 메밀

올해 초 예기치 않게 석 달 정도 짧게 일을 하고 다시 긴 자체 휴가를 얻게 되었다(백수가 되었다는 뜻이다). 철이 없는 것인지 아직 살 만한 것인지, 오히려 잘 됐다며 바로 구글 항공편 검색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다카마쓰행 7박 8일 왕복 항공권을 끊고 다음은 에어비앤비. 일정에 맞는 다카마쓰 숙소는 없고, 대신에 근처의 쇼도시마에서 4박, 다카마쓰에서 3박 하는 일정을 제안해 준다.


IMG_3056.jpg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2025가 개최 중인 다카마쓰 항. 쇼도시마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중.


쇼도시마는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북쪽의 섬으로, 다카마쓰행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세토 내해에 흩어진 크고 작은 섬들을 무대로 3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예술제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개최지 중 하나이며, 6년 전 다카마쓰에서 데시마로 가는 길에 배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가가와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는 하지만, 제주도 같은 곳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작게 느껴진다. 택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버스는 오후 6시 전후가 막차이며 그마저도 주말과 휴일에는 다니지 않는다. 편의점은 오직 세븐일레븐만 서너 개 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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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여 페리를 타고 도착한 쇼도시마


바다가 코 앞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작은 2층짜리 전통 다다미 가옥을 세로로 반을 갈라 한쪽에는 집주인 일가족이 생활하고, 나머지 절반을 숙소로 개조한 곳이다. 집주인의 할머니가 오랫동안 사시던 집이라고 한다. 첫날은 가볍게 주변을 산책하고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다다미에 적응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나이에 처음 해보는 것이 뭐 이렇게 많은지. 실로 오랜만에 방바닥에 요를 깔고, 시골집 특유의 쥐 죽은 듯한 고요를 어색해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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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섬마을의 전통 다다미 가옥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검색해 둔 식당으로 향한다. 구글맵은 알 수 없는 숲길로 나를 인도한다. ‘이게 길이 맞아?’라고 투덜거리던 참에, 어릴 적 집에 있던 윤무부 교수의 새소리 테이프를 틀어놓은 듯한 비현실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졸졸’이라는 의성어가 눈앞에 둥실 떠 있는 것만 같은 시냇물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에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다 보면 작은 마을 식당에 도착한다.


아침 식사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 소면집이다.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번역기로 찍어본다. 소면집이라 소면을 먹었으면 해서 메뉴가 소면밖에 없다는 소면 전문점. 제면소와 함께 운영하는 집인 듯하다. 주방 쪽으로 다가가 주인 언니(아주머니라고 하기엔 젊어 보이고 나보다 어릴지도 모를 외모라.......)에게 보통 크기 소면을 주문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잠시 후, 동그란 대나무 통에 데친 다시마가 얹어진 소면이 얼음물에 담겨 나온다. 일반적으로 모밀 국수를 시키면 나오는 쯔유보다 연한 맛의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자루 소바 스타일이다. 처음 맛보는 탱글탱글한 식감의 소면. 함께 나온 다진 생강 양념을 곁들이면 쌉쌀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담백한 국물과 잘 어우러진다. 어쩐지 유자 맛이 나는 것 같은데 일본어가 모자라 물어볼 수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 다음에 더 배워 오면 꼭 물어봐야지. 스피커에서는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가 연주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가 흘러나온다.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이 타지의 낯선 가게에서 흘러나오니 괜히 반갑고 신기하다. 슴슴한 맛과 차분한 분위기, 친절한 주인이 있는 작은 마을 소면집, ‘테노베소멘관(手延そうめん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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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게 차려진 소면 한 상


얼마 전에는 ‘寄り道(요리미치)’라는 단어를 배웠다. ‘가는 길에 들름, 돌아가서 다른 데 들름, 돌아서 가는 길’이라는 뜻. 나의 요리미치는 무엇일지 생각해보다, 여행이야말로 요리미치로 점철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거기에 맛있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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