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의 독서법

잠자고 있던 독서 노트를 깨우자

by 메밀

불현듯 나에게 독서 노트라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도 언리미티드였을 거다. 북 페어에 가서 책은 안 사고 독서 노트와 특이한 수입 연필, 수제 책갈피만 사 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근데 다 어디 갔지....... ㅠ) 책장에 화석처럼 꽂혀 있는 노트를 발굴해 본다. 더폴락이라는 대구의 한 독립 책방에서 만든 독서 노트. 날짜와 책 제목, 저자, 출판사 등을 적을 수 있는 독서 리스트, 그리고 구체적인 감상과 발췌문 등을 적는 감상 노트로 이루어져 있다. 하여튼, 독서 노트가 있으면 책을 열심히 읽게 될 줄 알았다. 인디아나 존스 주인공처럼 먼지를 털어내고 조심스레 노트를 펼쳐 본다. 2018년에 멈춰버린 여섯 줄짜리 짧은 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하하하. 역시 사람 쉽게 안 변한다. 특히 좋은 쪽으로는.


사실 그 이후로도 읽은 책은 수없이 많을 텐데. 인스타그램에 금세 휘발 되어버릴 의미 없는 인증샷만 올릴 뿐, 제대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도 뭔지 모르게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어릴 적엔 일곱 살 위인 작은언니가 책 좀 읽으라고 그렇게 잔소리하고는 했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도 방목하는데 그 아래 서열이 나서서 하는 잔소리가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목장 주인도 내버려 두는데 수선스러운 양치기 개가 나서서 기강을 잡으려는 것이 마뜩잖은 불량스러운 양의 심정이었달까. 그보다 세 살 많은, 나와는 열 살 차이가 나는 큰언니는 내가 공부하든 책을 읽든 탱자탱자 놀기만 하든 그냥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 대하듯 했고. 말 안 듣는 새끼 양이었을지 철 모르는 하룻강아지였을지 모를 그 시절부터 책을 읽고 간단하게나마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면, 지금쯤 정신적으로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을까.


어디 여행 가면 그 동네 책방은 꼭 들르고, 책 관련 행사도 가끔 가고,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를 쓰며 글 쓰는 연습도 하는 나, 그래도 제법 책을 좋아하는 좀 괜찮은 인격체 아닌가 생각했는데, 과연 그럴지 살짝 의문이 든다. 남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책을 많이 사는 편인가? 약간. 산 책들은 다 읽는가? 엄.......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에서 했던 말을 떠올린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


암요.


책꽂이를 뒤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각종 메모들을 참고해 지난 대여섯 해에 걸쳐서 읽었던 책들을 다시 리뷰하고 기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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