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To-do List를 만들자
약 7년 전 멈췄던 독서 노트 기록을 다시 시작했다. 그간 읽었던 책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어서, 일단 시간 역순으로 추적하며 목록부터 적어보고 있다. 소설과 에세이, 그림책과 만화책까지 참으로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그중, 특히 눈에 들어온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메멘과 모리>. 짐작하듯이 라틴어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에서 따온 이름이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다소 어둡고 무거운 뜻과는 달리, 일본어로는 ‘메멘 또(と, ‘~와/과’라는 뜻의 일본어 조사) 모리’라고도 읽히는 데서 착안한 재미난 제목이다. 누나 ‘메멘’과 동생 ‘모리’ 남매가 일상의 소소한 사건에서 느끼는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는 이야기다.
최근 일본어 공부에 재미를 붙여서인지 이런 언어유희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저 여행 갔을 때 안내판이라도 좀 읽을 줄 알아야 더 잘 돌아다닐 수 있겠다 싶어서, 일단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기초 책을 사서 따라 쓰면서 천천히 외워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각 글자의 발음을 듣고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도 더 배워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나는 새로운 것, 특히 언어를 배울 때 참 재미있어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불현듯 7년 묵은 독서 노트의 존재가 떠오른 것처럼. 낯선 언어를 발음하는 내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인터넷 강의와 교재를 신청하고, 빛의 속도로 배송된 교재를 펼치고 부록으로 제공되는 자료를 신나서 잔뜩 내려받았다. 학창 시절, 새로 받은 교과서를 펼칠 때 괜스레 설레던 간지러운 느낌이다.
학교를 벗어나 낯선 사회에 떨어져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고 이리 치이고 저리 떠밀리는 동안 조금씩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재미있어하는지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다. 백수 기간이 예상과 달리 길어지고 있어 빌 게이츠의 돈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덕에 이것저것 건드리다 보니,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다시 찾아가는 것 같다.
<메멘과 모리>의 두 번째 장은 메멘과 모리가 만든 지저분한 눈사람의 이야기다. 눈이 충분히 오지 않아 약간은 기괴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눈사람은, 자신을 보고 왠지 모르게 모두가 실망한 것이 최초의 기억이다. 존재론적 고뇌에 빠진 지저분한 눈사람은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본다. 온 세상의 지저분한 눈사람을 찾아다니며, 눈사람일 때의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게 해 주겠노라 다짐한다.
그때를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잔뜩 생각해 두자. (메멘과 모리 중에서)
비록 지금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지저분한 눈사람일지 모르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이 기간을 만끽하련다. 내일의 나를 위해서, 지금의 나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떠올리며 무엇이든 시도해 볼 작정이다.
일단 독서 노트 정리 마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