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 사진이 없네요 ㅠ
“조금 일찍 오셔서 시원한 보리차 한 잔과 함께, 강의 전 여유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중에 ‘풍월당’이라는 곳이 있다. 클래식 음반 매장인 풍월당에서는 매장 위층의 아카데미에서 클래식과 관련된 강의도 진행하는데, 매월 꼭 하나씩은 반드시 듣고 싶은 강의가 있다. 7월에 신청한 강의 하루 전 받은 안내 문자에 있던 ‘시원한 보리차’.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유난히 청량하게 느껴졌다. ‘시원한 커피, 시원한 아이스티’보다도 더.
어릴 적 주말에 장을 보는 것은 주로 아빠와 나의 역할이었다. 엄마와 언니들은 주말에는 웬만하면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놀랍게도 어린 시절의 나는 제법 아침형 인간이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아빠가 깨우는 소리에 한 번에 일어난 애는 너밖에 없음’이라는 큰언니의 증언이다.
어쨌든, 쇼핑 리스트에 항상 필수로 들어갔던 것이 동서 보리차 티백이었다. 엄마는 늘 커다란 주전자에 물을 가득 채우고 보리차 티백을 한두 개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이내 물이 팔팔 끓고 주전자가 “삐~” 요란스러운 단음의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하면 대용량 보리차가 완성되었다는 뜻이었다. 완성된 보리차는 썬키스트 (가끔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가득 담겼다. 최근 레트로 열풍에 살짝 올라타기도 했던 네모지면서도 둥그스름한 모양의 오돌토돌한 귤껍질 피부를 가진 그 유리병 말이다. 우리 집은 (특히 나는) 주로 썬키스트 주스를 선호했는데, 델몬트는 비교적 싱겁고 단 맛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았다. 흡사 코크와 펩시의 관계랄까.
또 어쨌든, 묵직한 유리병에 가득 담긴 보리차가 문간에 항상 자리하고 있던 냉장고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요즘은 집에도 정수기가 있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원한 물이 콸콸 나온다. 보리차를 일일이 끓여서 저장해 두는 수고로움은 없지만, 이렇게 떠올리고 보니 그 시절 그 보리차의 맛이 살짝 그립기도 하다.
당장은 집에 보리차가 없다. 지금 옆에 있는 이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호박차라도 시원하게 우려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