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것들
에세이 작가 태재님이 운영하는 '산문실'이라는 공간이 있다. 글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수업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제법 쌓인 산문실 적립금으로 뭘 하면 좋을지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숲속언어채집단’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숲 해설가와 함께하는 수업이라.... 어쩐지 호기심이 당겼다.
숲 해설에 대해 처음 알고 경험해 본 것은 여러 해 전, 제주도 서쪽의 환상숲 곶자왈공원에 갔을 때였다. 곶자왈이라는 특별한 숲과 나무가 그 자리에 그렇게 생겨난 과정과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던 해설가의 모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에, 숲속언어채집단에도 더욱 눈이 갔다.
수업 첫날에는 자연의 언어로 된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 지난여름 뒤늦게 맛보고 감명받았던 들기름 막국수에서 영감 받아 ‘메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나무의 잎과 꽃, 열매 등 숲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법을 배우고, 집 근처 정릉천 산책길 입구에서 본 키 작은 나무에 메밀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달고 주기적으로 관찰하기로 했다. 그 덕에 일부러 내려가 볼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았던 정릉천을 천천히 산책하고,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기회가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코 앞에 있는 북한산을 삼십여 년 만에 오르며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의 색을 눈에 가득 담아보기도 했다.
함께 남산 숲을 걷고 나무를 관찰하는 동안, 이전에 주의 깊게 봐주지 못했던 식물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지능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했던가. 눈앞에서 처절한 생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숲을 보고도 무심코 지나치던 나날들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종국에는 누구나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거대한 변화가 숲에서는 매일 벌어진다. 늘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있는 줄 알았던 이름 모를 나무도 매번 새로운 모습,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어제 보았던 초라한 나무가 내일 어떤 꽃을 피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우연히 점자라는 또 다른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점자를 배우며 처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종이에 인쇄되어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읽어낼 수 없는 글자를 ‘묵자(墨字)’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한자는 다르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아무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침묵(沈默)하는 글자'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점자는 그런 묵자에 생기를 불어넣어 시각장애인들이 비로소 만지고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다.
최근 알게 된 두 세계, 숲 해설과 점자는 어떤 점에서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우리 주변의 숲과 나무를 바로 보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숲 해설과, 평평한 묵자에 입체감을 부여하여 모두가 차별 없이 지식과 지혜를 채우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점자는, 또 다른 눈을 뜨게 해 준다는 점에서 비슷한 역할을 한다. 어쩌면 뒤늦게 새로이 뜨인 눈들이, 앞으로 또 어떤 그림을 내 앞에 펼쳐 보여줄지 더욱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