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카페 사장님 관찰기

in 속초

by 박초록

우리 가족은 속초를 좋아한다. 속초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반짝이든 영랑호와 그 둘레의 산책길, 그리고 가까운 곳에 푸른 동해바다와 웅장하고 비현실적인 울산바위도 있어서 모든 자연을 가까이서 보고 느끼면서 쉴 수 있다. 그리고 내 취미는 여행을 가든 어딜 가든 낯선 곳에 있는 개인 카페 찾아가기. 어느 지역에나 커피를 정말 사랑하며 맛있게 만드는 주관 있는 사장님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공간을 마주하고 맛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특히 아이스라떼가 싱겁지 않고 고소하며 아 맛있다 하는 그런 곳(생각보다 많지 않음).


숙소 가까운 곳에 로스터리 카페가 있었다. 열심히 메뉴를 살펴봤는데 오 일반적이지 않다. 일단 통과. 메뉴판부터가 통통 튀고 디자인적으로 뛰어나다. 다른 카페에서 볼 수 없는 메뉴와 이름들. 크림커피가 시그니처인 다른 카페들과도 차별화되어 있다. 오 좋은걸. 다음은 리뷰와 사진 살펴보기. 칭찬일색이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요. 이거 마시러 속초와요. 커피 위에 크림을 듬뿍 얹고 그 위에 피스타치오가 작은 동산처럼 소복이 올리간 비주얼도 장난 아니고 온통 컬러풀한 소품과 지붕색깔. 게다가 작은 마당에 고양이도 있다! 오 뭐야 내 스타일이잖아. 그런데 리뷰 중 사장님이 너무 불친절하다는 글이 있었다. 그런가 싶었는데 비슷한 리뷰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손님에게 면박을 준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리뷰도 있고 언성을 높였다기도 하고. 서비스업인데 커피가 아무리 맛있으면 뭐하냐는 글도 있었다. 나 같으면 그래도 커피가 맛있으니 방문하겠다는 입장인데 남편과 딸은 자기 같으면 안 가겠단다 하하.


내가 이래 봬도 심리학자인데. 호기심이 발동했다. 커피와 사장님 둘 다에 대한. 내일 가보겠다. 미리 정보를 얻었으니 혹시 모를 상황에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커피맛도 보고 사장님도 관찰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안고. 너희들은 차에 있어라, 내가 다녀오겠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비장하다. 어디 전쟁터 나가니?


아무튼 알록달록 작고 귀여운 그 카페 오픈시간에 맞춰 홀로 입장했다. 날씨도 좋고 햇빛이 반짝반짝해서 마당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살랑살랑 예뻤다. 게다가 들어가자마자 개냥이 한 마리가 내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며 막 어필하네 막 나를 유혹하네. 어찌 안 반하나. 카페로 들어가는 문에는 여러 가지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간단히 확인한 뒤 문을 열고 입장. 드디어 사장님과 조우했다.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셨다. 기분도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으셨지만 그럴 수도 있지. 커피를 주문하고 테이크아웃 할 거라 멀뚱히 서 있었더니, 마당이 편하시면 나가계셔도 된다 가져다 드리겠다 하신다. 근데 그 편이 사장님이 편하셔서 그러신 것 같아 마당에서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사장님을 뵈니 왜 그런 리뷰들이 올라왔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체 약간 무뚝뚝하시고 예민하신 것 같았다. 심지어 영수증에도 여러 가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카페의 규칙 여러 개가 적혀있었다. 그게 결과적으로는 손님들을 배려하고 편하게 해 주려는 규칙임에도(예를 들면 커피트레이를 정리하지 말고 두고 가라는) 읽는 이에 따라 엄격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사장님 스타일인 것 같았다. 모든 부분에서 정해진 규칙과 내 방식에 따라 내가 하는 게 편한. 그게 침해당하는 어떤 순간들에서의 반응에서 손님들과 마찰이 생기기 쉬운 것 같았다. 그런 반응과 리뷰들을 사장님도 모를 리 없고 신경을 쓰시는지 나를 대하는 말투나 태도에서도 다소 노력하시는 게 느껴져 마음이 조금 짠했다. 약간 주눅이 들어 친절하시려고 애쓰시는듯한 느낌. 원래 스타일이 그러신 거지 특별히 악의를 가지고 대하시는 게 아닌데도 그렇게 보이는 것에 대해 억울한 마음도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 남편이 와서 카페를 둘러보는 도중 커피가 나왔고 그 과정에서도 좀 재밌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까처럼 뭔가 우리를 배려해 주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하셨지만 그게 좀 일방적이셔서 자신의 방식을 따르길 요구받는 느낌이었다. 일관적이셔. 그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약간 덩달아 긴장되는 느낌을 살짝 받았으나 이분을 어느 정도 개념화하고 있던 터라 이해가 되었다.


마당에서 미친 비주얼의 커피 사진을 찍고 한입 떠먹었는데 충격을 받았다. 너무 맛있어서. 피스타치오와 크림과 에스프레소의 조화가 그냥 미쳤다. 살면서 마신 수많은 커피들 중 가장 인상 깊고 맛있는 커피 탑 3에 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관찰한 사장님에 대해 남편과 얘기하다가 남편이 '그래서 커피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시나 봐'라고 했다. 오 좋은 포인트.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기특하군ㅋㅋ. 난 한편으론 이렇게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렵고 서툰 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계속하고 계신 부분이 좀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다들 자기 삶의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커피, 포스터, 소품들, 가구들, 심지어 영수증과 지붕색깔까지 온통 알록달록하고 컬러풀하고 통통 튀는 게 사장님을 만나고 더 신기했다. 사장님 본인의 성향과 너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리학에서 색깔은 정서를 나타낸다고 하고 실제 그렇게 투사되는 경향이 있다. 아예 정서가가 없으신 분이 아니라 그런 부분을 사람에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게 어려워 다른 대상들을 통해 맘껏 표출하고 계신 게 아닌가 싶었다. 포스터나 메뉴판만 보면 세상 외향적인 분이신데요.. 이렇게 개성과 본인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이 좋다. 너무 맛있는 커피와 재밌는 경험을 하게 해 주신 사장님께 감사하며. 저는 커피 마시러 또 갈 거예요! 사장님이 심지어 처음 왔다고 드립백도 챙겨주셨다구요. 무뚝뚝한 말투로ㅎㅎ. 누가 처음이고 누가 재방문자인지도 속으로 다 보고 계신 사장님. 번창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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