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진행 중

뒤섞인 감정들에 대하여

by 박초록

뭔가 확 지르고 나니 급박하게 상황이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후임자가 될 분께 의사를 전달했고, 의사를 확인했고, 그분은 또 지금 직장에 확인을 해야 하고. 그동안 나는 가장 첫 번째이자 큰 관문인 센터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퇴사의 이유들을 머릿속으로 많이 생각해 봤기 때문에 담담히 잘 말씀드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센터장님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계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 받아들여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들을 논의하다 마지막에 이 이야기를 꺼내자, 또 왜~라고 하시며 진심으로 놀라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힘든 게 있었냐 물어보시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그건 뭐였을까. 두 가지였던 것 같다. 하나는 그동안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엄마로서의 죄책감과 하나는 중간관리자로서 외롭게 지켰던 마음들. 부담감, 책임감, 스트레스들이 누가 그 마음을 그냥 물어줬을 뿐인데 잘 막아뒀던 감정의 둑이 정말 툭 터져버렸다고 할까. 너무 민망하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설명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이런저런 그간의 고충들을 얘기하는데 나한테 왜 얘기 안 했냐고, 왜 혼자 끙끙 앓고 있었느냐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지 왜 그만두느냐고, 이런 어려움이나 상황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도 배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또 육아 때문에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적극적으로 요청을 해서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하셨다. 그러면서 그 자리를 그렇게 어렵게 느끼는지 몰랐다고도 하시고, 다른 업무에 비해 관리자로서 차지하는 비중도 한 20% 정도로 적은 줄 알았다고도 하셨다. 나는 50% 이상이었는데. 그리고 이런 어려움이나 상황이 당연히 처음도 아니고 그동안 왜 해결하려는 노력을 안 했겠나. 정말 내 안에서 스스로 깎기고 닳고 닳아 뭉툭해진 부분도 많아졌다.


오늘도 사실 <궁금한 건 당신>이라는 인터뷰집을 읽다가 그중에 '굿수진'이라는 여행 유튜버가 나왔다. 거기에도 퇴사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회사원이었던 굿수진님이 퇴사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 나왔다. 한 영상 안에서도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난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거지. 당장 퇴사각!'이라며 얘기를 하다가 또 컷이 바뀌며 '아 어떡하죠. 불안해요. 마음이 오락가락해요'라고 풀이 죽은 듯 하소연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사람 마음이 다 똑같구나 하면서 웃었고 위로를 받았다. 거기에 그런 말이 나왔다.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아마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문구인 것 같은데 그 말에도 공감이 갔고, 굿수진님은 회사를 퇴사하는 것을 '졸업'한다고 표현했다. 아 이거구나 싶었다. 나도 8년간 이 회사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얻었다. 가장 크게 얻은 건 나의 동료들, 그리고 내 수많은 내담자들과의 만남, 그중 기억나는 몇몇 사례들, 주체적으로 진행했던 행사들과 발표들. 나의 30대를 바치며 경험한 진짜 값지고 소중한 보물들이다. 그리고 나는 졸업을 한다.


센터장님과의 면담에서 또 눈물이 났던 부분은 비단 퇴사에 대한 내 감정들 뿐만이 아니라 감사함과 감동 때문인 것도 있었다. 아쉬움을 표현하시면 나를 참 좋아했다고 말씀하신 것. 그리고 항상 나에 비해 이 자리와 회사가 작다고(!) 느끼셨다고 말씀해 주신 것. 그리고 나라면 어디를 가도 정말 잘할 거라고 응원해 주신 것. (쓰면서도 또 눈물이 나는데) 그 말들이 얼마나 크고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는 말이었는지 센터장님은 아실까. 아마 회사를 나가 잘해나갈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 때 가장 크게 붙잡고 갈 말들과 장면인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얻은 것에 추가!


사실 나와 내 주변에 대부분 회사원들이라서 더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궁금한 건 당신>이라는 책에 굉장히 다양한 일의 형태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것도 참 좋았다. 어떤 모습으로든 나에게 맞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내 결정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며 살아가면 된다. 기회는 언제나 또 찾아올 것이고 삶은 아직 길다. 어차피 평생 이 회사를 다닐 것도 아닌데 (생각하면 솔직히 끔찍하다) 조금 일찍 나가는 게 큰 사건은 아닐 것이고 더 나이 들어 나가는 것보다 더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쉬워질 거라 생각한다. 내가 특히 더 어떤 부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지를 이번 기회에 깨달았고,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좀 더 견딜 수 있는 만한 상황으로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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