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퇴사일지
어젯밤 잠결에 내가 퇴사하겠다고 말한 사실을 문득 깨닫고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정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원래 잠을 정말 잘 자는데 어제는 잠도 안 오고 잠을 많이 설친 것 같다.
'모든 자리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라고 후임자 선생님께 말하고 나니 스스로 조금 위로가 되었다. 어딜 가든 어떤 선택을 하든 장점을 보며 나아갔으면 좋겠다.
당연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싶을 때 마음을 정했다.
그동안 쌓여왔던 여러 이유들을 한 번에 촉발시킬 사건이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결정이 없었을 것 같다. 퇴사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그래서 한편으론 힘들었지만 고맙기도 했다. 내 등을 떠밀어줘서. 이 직업의 특성상 금방 쉽게 그만둘 수가 없다. 내담자들과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혹여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어도 쉽게 나서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사실 오래된 고인 물처럼 여겨지는 이곳을 벗어나 한 발짝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눈 딱 감고 끈을 잘라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남은 절차들이 많다. 후임자도 잘 뽑고 자리 잡게 도와줘야 하고 내 상담들도 마무리해야 하고 업무의 공백이 없게 해야 하고.
아직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데 이 자리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에게는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웠던 자리라서 회사를 나가게 된다면 아무런 속박이 없는 게 가장 만족스럽고 너무 자유로울 것 같다. 당분간은 그 무게들을 내려놓고 즐겨야지. 나는 내가 참 중요한 사람이라 당분간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 풀타임으로 돌아갈 일도 당분간 없을 것 같고. 직업의 장점을 살려 프리랜서로 멋지게 도약해 보자.
그리고 사실 아이들에 대한게 가장 컸다.
아이가 돌봄센터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그냥 안타까움 정도였는데 개학을 하고 보니 현.실.이었다. 학교가 1시 40분에 끝나는 현실ㅎㅎㅎ (다들 어떻게 초등 아이들을 키우고 계신가요?) 매일 아이를 집에 혼자 오래 두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컸고 엄마가 더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회사 안 가는 게 좋아라고 매번 단호히 말하는 아이에게서 좀 더 확신을 얻었다.
퇴사 후 위시리스트
1. 히피펌
2.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 비우고 쓸고 닦기
(이 두 가지가 회사 다니면서 가장 아쉽고 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3. 아이들 남편 다 보내고 (맘 편하게) 운동하기
4. 천천히 책 읽기
5. 여유 있게 집밥 해 먹기
6. 저녁은 미리 준비하기
7. 4시부터는 아이들을 위한 시간 보내기
8. 흐트러지지 말고 아침~오전 시간 알차게 보내기
9. 아이들 유튜브 끊기
10. 평일 여행-혼자 혹은 아이들과
아직 갈길이 멀지만 조금 (많이) 설레는 것 같다.
8년 동안 일하고 (종종거리며) 애 둘 키우느라 고생했다 나 자신!
+방금 읽던 책이 이런 부분이 나온다. 소진된 나 자신을 좀 더 챙기고 싶었던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에 동의하며 퇴사를 선택했지만, 지금까지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모든 워킹맘을 존중하고 격하게 응원하고 싶다!!
"가난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과 육아를 포기할 수 없는 시간 빈곤자가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운동을 포기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는 시간을 포기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동시에 최악의 선택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을 포기한 후에 남은 시간의 질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_김지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