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소중하다

직장에서 다정하기

by 박초록

관계가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는데도 가장 중요한 것이 대인관계라는 것도. 상담도 사실은 관계가 전부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한편으로 좀 쓰렸는데, 나는 관계에 서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지만 그 경계가 좀 엄격하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편이었다.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나로서는 좀 어렵고, 어떤 사람의 안 좋은 측면이 보이면 금세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도 쉬워서 차라리 거리를 두고 혼자인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로서는 일찍 결혼을 한 것이 나에게 맞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연락도 잘 안 하고 어쩌다 가끔씩 안부를 묻곤 하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 나의 정서적, 관계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고 할까. 그래서 친구가 그렇게 많이 없어도 외로움도 딱히 느끼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왔던 것 같다.


내가 직장에서 중간관리자로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도 사람이었다. 전에는 몰랐지만 이 자리에 와보니 의외로 스트레스가 아주 심했는데, 일단 위에도 맞추고 아래도 맞춰야 하는 중간에 끼여있는 자리라는 것과 다양한 인성과 성격과 배경을 가진 직원들의 면면을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 특히 그게 나의 규칙,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일 때는 혼자서 속앓이를 정말 많이 했다. 처음에는 그런 부분을 일일이 지적하기도 했는데 나의 기준이 높은 건지, 내가 보수적인 건지, 아니면 이건 정말 아닌 건지 갈수록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mz들 말로 꼰대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런 스트레스를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아주 외로운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흑. 직원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이런 부분들을 전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거리를 두자니 또 외롭고 마음이 어려워지고.


그러다 작년 말 들었던 <대상관계이론> 교육에서 내가 소위말하는 '분열(slitting)'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아기들은 젖을 주는 좋은 엄마와 나를 아프게 하는 나쁜 엄마를 구분하지 못하고 구분을 짓는데, 점차 그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하나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점차 엄마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통합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상항상성'을 갖게 되는데, 한 대상의 나쁜 부분을 대면할 때도 여전히 그 사람의 좋은 면들도 함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사람을 분리(splitting)하고 있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실 모든 사람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다 가지고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런데 조금만 상대방에게 실망하거나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면 그냥 그 사람을 거절하고 외면했다. 그래서 관계를 맺고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과정이 어려웠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당시 그 대상관계이론 강의를 해주셨던 교수님은 그래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잘 버무려야'한다고 했다. 그 표현이 나에게 너무 와닿아서 올해의 꼭 기억하고 실천할 목표로 삼고 다이어리 맨 앞장에 적어두기도 했다. 나의 약한 면을 다른 사람들이 그동안 받아주고 눈감아주고 넘어갔듯이, 나도 상대의 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담아주고 눈감아주고 잘 버무려보자고.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지만 나만 아는 나의 웃긴 부분이 있는데, 직원들이 새로 들어오면 인정을 못했다. 심지어 내가 뽑았는데도. 내 눈에 너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고 실수도 많은 것 같고 성격이 왜 저러지 싶은 부분이 있었다. 전에도 그랬듯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거리를 두고 실수할 때마다 매정하게 대하기도 했다. 좀 더 친절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뭐라고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했지 싶다. 그래서 거의 모든 직원들이 입사한 지 1년 정도가 지나야 그제야 좀 마음을 주고 곁을 주었다. 자그마치 1년. 1년 동안 너무 실수가 많고 감정 표현이 과해서 눈에 차지 않던 직원에게 냉정하게 대하던 내 모습이 어느 순간 너무 못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계기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어떤 책을 읽으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인것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깨달아졌다. 나에게 타인을 그렇게 함부로 대할 자격이 없다는 걸 몸소 느끼면서였던 것 같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남편과 13년을 같이 살면서 이 사람의 못난 부분, 미운 부분도 부부라는 관계 때문에 함께 지내면서 견뎌내고 지금의 통합 과정에 이른 것처럼, 직장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내 안에서 버무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어떤 사람이 싫다고 그냥 거리를 두거나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서, 더구나 관리자의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 보기 싫어도 일을 위해 관계를 이어나가며 그 사람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 스스로도 많이 깎이고 돌아보고 반성하고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사람이 귀하다는 말을 잘 몰랐다. 상담자이면서도 '난 인간이 싫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건 인간의 '부족하고 어리석은 부분'이 싫다는 말이었다. 내 내담자를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냉정했다. 그런데 직장 내에서 이렇게 '그래도 이어가고 참아내야 하는 관계'들이 나를 좀 더 성숙하게 만들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만들어줬다. splitting 하는 엄마는 가정을 분열시키고, splitting 하는 리더는 조직을 분열시키고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 아직도 갈길이 정말 정말 멀고 더 많은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안다. 이렇게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앞으로도 또 직원들을 보며 또 스트레스받고, 또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참아야 하나 고민하고, 혼자 속앓이 하겠지만 그 사람의 행동과 별개로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무엇보다 다정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all good이나 all bad는 없다. 비빔밥처럼 잘 버무려보기!

작가의 이전글기록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