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형 포기하지 말아요

by 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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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 "아무리 없어도 너 밥 사줄 돈은 있어"


마날리에서 라다크까지 근 2주간 함께 동행을 한 동생이 있다. 이름은 김용규, 어쩌다보니 라다크 여행을 하면서 줄곧 나의 룸메이트였다. 그러다보니 많은 대화를 나눈 동생이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는 친구가 되기 싶다. 서로의 관심사도 비슷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관계가 아니다보니, 학창시절 친구들 만큼이나 편안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규도 나와 비슷하게 군대를 전역하고 여행을 떠나왔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29살에 병사전역을, 그는 28살에 장교전역을 했다는 점. 실제로 여행을 하다보니, 남자들의 경우는 군대를 전역하고 여행을 떠나온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장교전역을 하고 여행을 떠나온 20대 중반 여행자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장교생활 3년이면 1년 세계일주에 필요하다는 2-3천만원 정도는 모아서 나올 수 있으니까.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답답한 군생활을 마치고 여행을 떠나오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도 있겠다.


용규는 특전사 출신 장교였다. 하지만 다른 장교출신 여행자들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공수부대 출신이라 생명수당이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꽤나 많은 돈을 모았고, 실제로 다른 여행자들보다 재정적으로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막쓰지는 않았지만, 늘 재정적으로 신중한 나의 시선으로만 보면 돈을 쓰는데 거침이 없었다.


라다크로 올라오기 전, 마날리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다. 다른 일행들은 각기 흩어지고, 나와 용규는 숙소 근처 뚝바 (tukpa) 라는 티벳식 수제비를 먹으러 갔다. 가격은 고작 100루피 정도로, 한화로 1,800원 정도 수준이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최소 하루 숙박이 200루피 (3,6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꽤나 큰 돈이다. (실제로 인도에서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고작 10루피를 깍기 위해서 릭샤운전사와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먼저 일어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그러더니, 용규가 따라와서는 말려선다.


아, 형. 허세부리지 말아요 ㅋㅋ


그동안 대화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에, 용규는 내가 어떻게 여행을 떠나왔고, 나의 주머니 사정이 어떤지를 잘알았다. 고작 100루피라는 작은 돈이지만, 용규가 보았을 때 나에게 무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거다. 하루에 숙박비까지 최대 400루피 (한화 7,200원)도 안쓰던 나였으니까. 하루예산의 절반을 저녁값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니 용규가 말리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너 밥 사줄 돈은 있어. 이거 써서 여행 더 못하면 벌써 그만뒀겠지.


용규는 머쓱해하더니 그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잘먹었다는 인사를 건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날, 함께 라다크로 출발을 했고, 라다크에서의 전일정을 그와 함께 했다.



___ "형, 저 돈 많아요. 포기하지 말아요"


약 일주일간의 라다크 여행이 끝나고 우리 일행은 서로 뿔뿔히 흩어지게 됐다. 함께 여행을 했던 커플은 먼저 스리나가르로 내려가고, 다른 일행들은 각자 또 자신만의 흐름을 따라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용규 또한 그래야 했다. 나는 라다크에 더 머물고 싶었고, 우리는 이제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한국에서 포토프린터를 가져온 이후로, 함께 여행을 한 인연들에게는 늘 소소하지만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뽑아주었다. 용규를 포함하여 함께 한 여행자 친구들에게도 판공초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뽑아, 뒤에 편지를 간단히 적어 선물로 주었다.


다른 일행들은 다 떠나고, 용규 또한 스리나가르로 떠나는 버스를 타야할 때가 됐다. 그동안 함께 한 정이 있어서, 버스터미널로 마중을 다녀왔다. 그렇게 그를 보내고 슈퍼에서 뭘 사려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용규가 다시 돌아오더니,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형, 저 돈 많아요. 포기하지 말아요.


손에 쥔걸 보니 100달러였다. 그는 거절할 틈도 없이 후다닥 가버렸다. 나는 멍청하게 그가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당시 시점, 인도여행을 한지 3주가 지났다. 인도 입국당시 100만원을 갖고 들어왔는데, 벌써 40만원 가까이 써갔고, 남은 돈은 60만원 조금 넘게 있었다. 동남아를 여행할 때는 자금상황이 더 좋지 않았지만, 태국에 연고지가 있기도 했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결과적으로는 4개월동안 여행을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상황이 달랐다. 연고지는 커녕, 아는 사람도 없다. 인도여행 3주동안 단 한 번의 후원도 받아본 적이 없다. 물론 남은 자금이면 인도를 두 달정도 더 여행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용규가 쥐어주고 간 100달러는 인도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받은 후원금(?) 이었다. 용규 덕분에 라다크에서 추가 일주일 숙박 및 생활비가 해결됐으니, 어마어마한 도움이었다. 우연한 타이밍이었지만, 그 때 이후로, 한국에서 아는 지인들과 SNS로 여행을 지켜보시는 몇몇 페친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후원금이 추가로 들어왔다. 인도여행 한달차, 다시 여행자금은 100만원으로 회귀했다. 10만원으로 한 달만 버텨보자라고 출발했던 여행이, 동남아만 여행해보자라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랬던 여행이 캄보디아에서 특별한 후원으로, 인도 땅을 밟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지금은 세계여행 출발 5개월차, 어느덧 인도여행 3개월은 물론이고, 다음 여정까지 꿈꿀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예상치도 못한 만남과 그분들이 도와주신 도움이 절대적으로 크다. 용규 또한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한국에서는 작은 돈일 수 있지만, 당시 나에게는 정말 크나큰 도움이었다. 아직도 그가 나에게 라다크에서 던졌던 포기하지말라고 했던 그 마지막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덕분에 인도를 넘어,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654일간의 세계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헤어진 용규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4개월 뒤 이탈리아 로마에서 재회하게 되었고, 지금도 종종 만나며 가깝게 지내는 친한 동생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만날 때마다 그 때의 순간을 떠올리며 밥을 사라고 종용한다 ㅋㅋㅋㅋ


아 형, 허세 떨지 말라며~ 아 형, 저 돈 많다며~ ㅋㅋㅋ


사진 / 글 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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