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 뚜루뚝 마을에서 만난 학교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은 잠무 카슈미르라는 지역에서 종교와 영토 등의 문제로 인해 수십년간 전쟁중이다. 그 중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전에는 한 나라였는데,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정치세력이 나뉘었고, 핵전쟁의 위협이 있었을만큼 서로에게 적대적인 나라가 되었다. 뚜루뚝(Turtuk)마을은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인도인이라기보다는 스탄사람이라는 느낌이 많은데 (중앙아시아국가들) 이유는 뚜룩뚝 마을은 현재는 인도땅이지만 이전에는 파키스탄 땅이었기 때문이다. 뚜루뚝 마을은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으로 서로 빼앗고 빼앗기기를 여러번을 반복했는데, 그로 인해 이곳 주민들은 생전에 국적이 수도없이 바뀌었다고 한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니 사회적 인프라 발전도 늦거나 정체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뚜루뚝 마을은 오지 마을이 됐다. 오지 마을치고는 아스팔트 도로가 잘 깔려있지만, 본질적으로 군사적인 목적이 더 크다. 이곳에서는 전기도 해가 지는 순간부터 차단이 된다. 핸드폰 충전을 하려면, 낮에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해놓고, 밤에는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해야한다. 밤에 전기가 되지 않으니, 데워둔 물을 다 써버리면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다. 레에서는 간간히 가능했던 와이파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완전히 바깥 세상과 차단된 채 살아야 하는 그런 곳이다.
군대에서는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도 책을 읽는다고 했던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뚜루뚝 마을에서는 딱히 할게 없었고, 읽을 책도 없었기 때문에 사진 찍는 사람이 할 게 뭐 있겠는가. 사람들을 만나러,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섰다.
사람을 만나기 가장 좋은 곳은 시장과 학교다. 가장 그 지역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랄까. 뚜루뚝마을은 그 흔한 시장도 없었다. 작은 구멍가게 정도는 있었지만, 사람들끼리 모여서 내다파는 시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급자족으로 돌아가는 동네 같았다. 지도에서 보니 작은 학교가 하나 있었다.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허름한 건물에 변변치 않은 시설이었지만, 나름 교복도 있고 나름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정식학교였다. 학교 내에는 영국선생님을 비롯해 서구에서 오신듯한 몇몇 선생님들이 보였는데, 자원봉사로 이곳에서 교육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고 한다. 그 중에는 도시에 사는 인도인 선생님들도 있었다. 따로 선생님들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어느 정도 기간동안 봉사활동으로 오시는 듯 했고, 교장 선생님 정도만 현지에서 살고 계신 듯했다.
히잡을 쓰고 있는 여학생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여기가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 땅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학생들 같았다. 우리를 발견한 몇몇 학생들은 신기한듯 술렁거렸고, 몇몇 학생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학생들은 인상을 팍쓰며 우리를 피하기도 했다. 확실한 건,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것 같지는 않다.
멀리서 나마 사진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는데, 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화를 내면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자기를 찍은 것도 아닌데, 멀리서도 찍고 있는 내 모습이 영 불쾌했나보다. 그녀는 영어로 뭐라고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것 같다. 혹시 이슬람교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건 아닐까.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았다.
___ 알이즈웰이 준 마법
그나마 남학생들은 생각보다 호의적이었다. 그래도 쭈뼛쭈뼛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길래, 나는 영화 <세얼간이> 의 명대사중 하나를 떠올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알이즈웰 (모든 것은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자신들도 아는 영화고, 자신들도 아는 단어라서 그런지 그들은 상기된 얼굴로 크게 공감했다. 한 쪽 손으로는 가슴을 팍팍 치며, 한 쪽 손은 위로 올리며 그들은 모두 알이즈웰을 외쳤다. 영화에서 봤던 그대로다. 알이즈웰 하나로 어색했던 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풀렸다. 인도에서 알이즈웰의 마법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학생들은 그 이후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같이 축구를 하자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스마트폰 구경을 시켜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학생들과 그냥 놀기를 택했다. 나는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고, 다른 일행들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이돌의 영상을 보여주거나, 저장되어 있던 매체들을 학생들과 함께 공유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더욱 더 관심을 가졌고, 경계하던 눈빛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___ 경계를 풀기 시작하던 학생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얼굴은 편해졌다. 웃는 아이들이 많아졌고, 서스름 없이 다가와서 말을 거는 아이들도 생겼다. 처음에 사진을 무서워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던 아이들도 이제는 오히려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도 취했다. 여전히 쑥스러움이 많은 학생들도 사진을 찍히는데 처음처럼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____ 너를 몰랐으니까 *작가의 첫 개인전 <ESSE> 의 메인포스터 중 하나 였던 사진입니다.
처음에 나에게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사진 찍기를 거부했던 여학생이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도 궁금한지 옆에 다가와서는 카메라 LCD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편안하고 경계심 없는 그런 순수한 학생의 눈이었다.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너무나도 찍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물었다.
사진 찍을래?
그녀는 웃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담았다. 급하게 담니라 구도도 생각못헀다. 그 순간은 정말 그녀의 눈동자에만 집중을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잘 찍을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가장 인상깊은 사진이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까 전에는 사진을 안 찍겠다고 했는데
왜 지금은 사진을 찍는거야?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를 몰랐으니까.
간단하고도 사소한 한 문장이었지만, 나에게는 잔잔한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싫어하지 않았다. 종교적으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법도 없었다. (코란이 있을 때는 카메라가 없었으니) 단지,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히는 게 기분이 나빴을 뿐이다.
보통 여행자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새롭기 때문에 보는 순간 사진이나 영상을 담기에 바쁘다. 특히나 요즘은 인생샷, 인증샷 등 이미지에 열광을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이미지 한 장이 인생 역전을 시켜주기도 하고, 좋은 컨셉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미지 자체에 열광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단지, 이미지를 이용하여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내는 흐름이 문제다. 사진 한 장으로 남들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줄여서 허영심이라 부른다. 나 또한 그 허영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프리랜서에게는 허영심의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SNS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니까. 나 또한 때로는 허영심에 사로잡혀 다른 여행자들처럼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는 의미다.
사진찍는 사람이 허영심에 사로잡히면 찍히는 사람, 혹은 찍히는 피사체에 대한 고려보다 우선 찍고보자는 생각들이 강해진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온 삶과 비슷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없이, 우선 학교를 졸업하고보자, 우선 자격증을 따고보자가 앞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 교육의 폐해일수도 있겠다. 동기나 의도보다는 막연하게 그럴듯해보이는 결과를 강조하고 중요시하는 교육말이다.
나는 이 때까지 기술적으로 잘 찍어야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엘리트 코스를 잘 받아온 사람이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촬영테크닉과 보정테크닉이 좋은 사진들을 보면서 늘 환호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날 이 학생으로부터 좋은 사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 아니었다.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그 사진을 담았는지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술적으로 인물사진을 잘 찍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술은 배우고 익숙해지면 되니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니까.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당연하고, 상대에 대한 공감과 해석력이 인물사진을 담는데 본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그날 밤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피사체를 대해야할지 돌아보게 했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는 나에게 이렇게 재해석되어 들렸다.
당신이 사진을 잘 찍는 것은 우린 관심이 없어.
그보다 우리를 이해해주는 마음이 더 중요해.
(그래야 인물사진을 잘 찍을 수 있어)
___ 뚜루뚝에서 만난 아이들
학교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왔다. 중고등학교 주변과 다르게 어린 아이들이 많이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 큰 학생들과는 다르게 외지인인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뭘 달라고들 난리다. 맛있는게 있으면 달라고 하거나 1달러만 달라는 식이다. 어린 녀석들이 어디서 돈부터 달라고 하는지 괘씸하기도 했지만, 그 모습들이 밉지는 않다. 어른들처럼 음흉하지는 않으니까.
부모님들이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히지 말라고 했나보다. 한 엄마는 나와 놀고 있는 아이를 혼내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이들마다 하나 같이 사진은 찍으면 안된다고 한다. 왜 찍으면 안되냐고 물어보니 엄마 아빠가 찍히면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내심 카메라가 궁금한가 보다. 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니 본인들도 호기심이 생기는지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냥 찍히기는 그랬는지, 영악한 녀석들은 사진을 찍히면 안되는데, 뭐든 주면 사진을 찍혀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어린녀석들이 벌써부터 거래를 제안 하다니... 하지만 그게 인생이니, 일찍 배운다고 나쁜 것 같지만 않다.
가지고 있는 초콜렛을 주니 시키지 않은 표정까지 짓는다. 어떤 아이는 춤까지 추고, 어떤 아이들은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받은 만큼 자기의 역할은 충실히 해주는 기특한 녀석들이다. 가지고 온 사진용지가 있어 사진을 주려고 뽑아줬다. 받고 싶긴 한데, 부모님 눈치가 보이는지 사진은 가져가지 않는다. 엄마 아빠한테 걸리면 큰일난다고 생각을 하나, 그래도 실속은 다 챙겨서 가는 아이들,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___ 무엇을 보느냐가 아닌 어떻게 보느냐
모든 여행자는 처음 밟는 땅을 보며 설레기 마련이다. 그 땅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특별해보이는 선망의 땅이라도 그곳에서 살게 되면 그전과 다를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 된다. 일상이 되는 순간 여행자의 콩깍지는 벗어지고, 자신이 살던 곳과 별반 다를바 없는, 아니 더 가혹한 현실을 마주할 수도 있다.
특별함이란,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감정일 수 밖에 없다. 세계일주가 꿈인 사람들도 있지만, 수년간 여행만 해온 사람들에게는 일상으로 돌아가는게 꿈일 수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처해진 상황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어느 나라가 특별했냐고 물어보면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느낀 것이 정답도 아니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그곳을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사람들에게 남산타워가 세계에서 가장 멋지다니까 다른 곳은 가지마라고 하면 언어폭력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썸 타는 연인과 함께라면 숨어서 휴게소에서 라면만 먹어도 낭만이 된다. 이건 사실이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는 특별함을 찾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러면 평범한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특별한 곳에서는 일상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러면 여행 속에서도 돌아갈 일상을 잊지 않는 방향성이 나왔다. 결국 마음의 문제다. 무엇을 하느냐, 어디를 가느냐의 문제가 아닌, 어떤 마음으로 내 앞의 세상을 대할 것인가에서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의 실마리가 나왔다.
사진 / 글 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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