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 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비슷한 존재
판공초에 다녀온 여독이 아직 풀리지도 않았는데 다음 여행지를 모색한다. 라다크 여행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쉬고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역시 여행자들의 여행욕은 멈출 줄 모른다. 나는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가 아니다. 며칠 정도는 쉬고 싶었다. 그러나 나와 함께 라다크로 올라온 친구들은 모두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여유가 있지만, 나름 목표가 있고, 어떤 이들은 귀국행 비행날짜가 다가온다.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같은 곳에 왔지만, 처한 상황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라다크에서 만큼은 모두가 같이 움직일 줄 알았다. 나를 비롯한 한 팀은 뚜루뚝마을이 있는 누브라벨리, 다른 몇 명은 라마유르를 가고 싶어했다. 서로 생각이 달랐지만, 무작정 달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나중에 라마유르를 가고 싶었고, 한 명은 스리나가르를 가는 길에 가고 싶어했다. 라마유르를 가고 싶었던 친구들도 누브라벨리를 가고 싶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산지대를 또 넘어야 한다는 말에 두려워했을 뿐이다. 이토록 우리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르고, 다른 것 같지만 서로 비슷하다. 모두가 여행을 하고 싶지만,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달라 선택의 차이가 있을 뿐, 누가 누구보다 낫고, 누가 누구보다 못하지 않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라다크로 올라온 이후로 처음으로 흩어졌다.
___ 가장 불편하고 가장 불안했던 여행
누브라벨리 뚜루뚝 마을로 가려면 판공초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여행사에 문의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버스터미널 주변으로 가서 누브라벨리로 가는 차량을 직접 섭외해서 가는 방법이다. 나와 함께 누브라벨리로 가는 팀은 차를 직접 섭외해서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우리는 버스터미널 근처로 가서 차를 찾았다. 하지만 차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 차가 다 떠났거나, 자리가 애매해서 함께 타고 갈 수 있는 차량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차량 한 대를 찾았다. 하지만 차 상태가 별로 좋지가 않다. 레로 올 때 타고 온 지프보다는 당연하고, 판공초를 갈 때 탔던 지프보다 한 참 작고 불편해보였다. 게다가 아무리 협상을 해도 비용협상이 쉽지 않다. 시간을 더 늦출 수 없으니 우리는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그런데 갑자기 기사가 한 서구여성을 데리고 오더니 우리 차량에 태웠다. 안 그래도 불편한데, 좁게 가야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한 사람이 더 탔으니까 가격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기사는 들은 척도 안하고 갈 거면 가고 말 거면 말라는 식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니까. 그래도 출발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고작 200킬로 밖에 안되는 여정이 이토록 힘들 줄 몰랐다.
____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 카르동라
구글지도로는 레에서 누브라벨리까지 204킬로정도, 차로 6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마날리에서 레까지는 그것보다 더 멀고 험난했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다크에서 가장 험난했던 일정은 바로 누브라벨리 여정이었다. 레에서 누브라벨리로 가려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카르동라 (18380피트)를 넘어야 한다.
고산지대에 대한 이야기는 지겹게 했으니 카르동라라고 다르지 않다. 그냥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높다. 체감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차량이다. 지금까지 탄 것 중에 차 상태가 가장 좋지 않았다. 차체도 작았지만, 바퀴도 작았다. 모든 길이 다 비포장 도로에다가 자갈길도 달려야 하는데, 겉으로 보기만 해도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듯이 흔들거리며 달려, 구글지도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그곳은, 약 4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도착했다.
____ 결국 터져버린 타이어
카르동라를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펑소리가 났다. 대충 들어도 뭔가 터지는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타이어가 터져서 주저 앉아버렸다. 보통 빵꾸가 나면 조금씩 바람이 빠지기 마련인데, 이 타이어는 한 번에 터져버렸다. 스페어 타이어 상태도 곧 터질 것만 같다. 더 충격적인 건 기사의 표정이 그닥 당황스럽지 않다. 트렁크에서 도구 몇개를 꺼내더니 20분 정도 손을 본 후, 다시 타라는 제스처를 보인다. 불안해하는 우리를 향해 기사는 말했다. 충격이었다.
저는 디스킷 (DISKIT)까지만 데려다드릴 수 있어요. 거기서는 차량을 바꾸어 타셔야 합니다.
디스킷은 레와 뚜루뚝마을 사이에 있는 가장 큰 마을이다. 기사는 그곳에서 로컬버스나, 다른 차량을 렌탈해서 가야한다고 했다. 문제는 거리다. 디스킷에서 뚜루뚝마을까지 가까우면 상관없는데, 거리상으로 보면 레에서 디스킷을 가는 거리보다 멀다. 불만을 토로하지만 기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지겹고 상투적인 인도인들의 유행어(?)를 반복한다.
노프러블럼.
____ 로컬버스를 타기 위한 전쟁
2시간이 더 걸려서야 디스킷에 도착했다. 총 걸리는 시간이 6시간 반이라고 했는데, 중간마을까지 오는데만 6시간이 걸렸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곳이 라다크라지만, 중간에 쉬었다가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조금이라도 빨리 뚜루뚝 마을로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나는 다른 차량기사를 고용해서 가고 싶었지만, 함께 한 일행들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로컬버스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다. 여성들은 매점에서 쉬라고 하고 남자들만 터미널로 가서 버스일정을 알아보낟. 알아보니 뚜루뚝마을로 가는 차는 이제 한 대 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도 20분도 남지 않았다. 서둘러 우리는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버스는 이미 사람이 가득 타고 있는 상태였다. 고작해야 한 명 정도 탈 수 있을까. 우리는 유일한 여성여행객을 먼저 태웠다. 문제는 우리였다. 서서 갈 수 있는 자리도 부족해보였다. 그렇다고 마지막 차인데 안 탈 수도 없었다. 우선 우리 짐을 버스 위에 실었다. 깊숙하게 실어서 뺄 수 없게 해놔야 우리를 버리고 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짐을 정리해주는 사람조차 없다. 각자의 짐은 각자가 버스 위로 올라가서 정리해야한다. 짐을 잡아주는 밧줄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자칫 잘못 덜컹거리다가 떨어지면 모든 짐들이 와장창 깨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함께 여행을 하던 용규가 제안을 했다.
형, 우리 그냥 버스 위에서 타고 갈까요?
엉뚱했지만 완전 신박한 제안이었다. 기사들한테 얘기하니 역시나 노프러블럼. 이럴 때 인도의 노프러블럼도 쓸모가 있구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인도에는 아주 확고하고도 분명한 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룰이 없는 것이 인도의 법이다.
___ 버스 위를 타고 가는 경험
디스킷에서 뚜루뚝마을로 가는 로컬버스가 출발한다. 버스 위에는 나와 용규, 그리고 현지인 한명이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걸쳐 승차했다. 생각보다 버스 위는 위험하지는 않았다. 레에서 디스킷을 올 때와는 달리 도로가 생각보다 좋은 편이었다. 물론 가끔씩 크게 덜컹거리면 몸이 붕 뜨기 때문에 손잡이를 꼭 잡고 있어야 했다.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버스 지붕에서 타고 가니 풍경을 더 멋있게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버스 뒤로 나오는 매연과 먼지를 감수해야 했지만 포지셔닝만 잘 하고 있으면 알아서 잘 피해갔다. 가장 인상깊었던 볼거리는 마지막에 승차한 현지인이었다. 팔힘이 좋은 건지 아니면 이렇게 차를 타고 다닌 경험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오로지 한손으로만 균형을 잡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본다. 거의 묘기 수준이다.
위험했지만, 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경험해보겠는가. 그렇다고 추천해드리지는 않는다. 늘 모든 여행이 다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모든 행동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니까.
___ 가장 힘겨웠던 여정
차량기사는 앞에 경찰이 나타날 때마다 짐 속에 파묻혀서 숨으라고 했다. 걸리면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몇 번은 운 좋게 넘어갔지만 결국 1시간만에 경찰에게 걸려 내려와야했다. 결국 기사는 자리가 없는 버스 안에 짐짝 넣듯이 우리를 꾸겨넣었고, 그렇게 우리는 3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했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폭풍이 몰려왔다. 버스의 모든 창문을 닫았지만 모래가 새어들어왔다. 만일 버스 위에 타고 있었더라면 꼼짝없이 모래폭풍을 직격탄으로 마실 뻔했다. 경찰한테 걸려서 내려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모래폭풍이 지속되는 한시간동안은 창문을 열지 못했다.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데 창문까지 열지 못하니 답답해 죽을 뻔 했다.
고난의 행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버스는 가다가 또 타이어가 터져버렸다. 뚜루뚝 마을로 가는 검문소에서는 우리 일행의 여권 하나를 문제삼고 꼬뚜리를 잡아서 그만큼 시간이 더 소요됐다. 기사는 거의 다왔다고 했지만 1시간, 2시간 끊임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일몰에 가까워 오는게 느껴졌고 숙소를 잡아놓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예상보다 3시간정도 늦었지만 다행히도 저녁 6시가 되서야 뚜루뚝 마을에 도착했다.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은 일몰과 동시에 여유따위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칠흙같은 암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___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태도
이번 뚜루뚝 여정이 가장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는 단순히 길이 험난해서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너무나도 많이 마주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좋은 일이어도 뜬금없이 다가오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쁜일을 마주한다면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서 정말 피곤했던 여정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 또한 나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나중에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라다크에서 이야기가 그 어느 곳보다도 많다는 것을. 힘든 시간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남긴다. 부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해석하는 자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되겠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에게는 토로하고 싶은 추억과 이야기가 된다. 뚜루뚝 마을, 그리고 라다크는 나에게 그런 땅이었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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