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 라다크에 온 진짜 이유
레에서 3일 정도 머문 후, 나는 일행들과 본격적으로 다음여행루트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바로 판공초로 가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라다크라는 이름보다 판공초라는 이름을 더 먼저 알았다. 유명한 인도영화 <세얼간이> 때문이다. 라다크에서 3주간 지내면서 라다크를 더 알아가면서 다시 오고 싶은 땅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내가 가장 관심이 있던 곳은 판공초였다.
___ 또 한 번의 고지, 창라
판공초를 가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높은 고지를 넘어야 한다. 무려 5360m,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도로라는 창라(Changla)다. (며칠 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라는 카르동라도 가지만, 사실 몇미터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높이에서만 봐도 느껴지지만, 8월 한 여름에 만년설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낮 평균 기온이 1-2도, 밤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창라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매점이 있다. 카르동라에서는 매점을 볼 수 없었으니, 창라가 내가 경험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매점이 아닐까 싶다. 차에서 내려 매점까지 걸어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3,500미터와는 클래스가 다르다. 여기는 확실히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하다는게 느껴진다. 간신히 화장실만 갔다가 사진만 찍고 차로 올라탄다. 아 여기서 사 먹는 초콜릿은 맛도 있지만 고산증세에 도움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레에서 창라까지 3시간 정도를 달렸는데, 창라에서 판공초까지는 최소 3시간이 남았다고 한다. 거기서 또 우리가 머물 숙소까지 1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소름끼쳤다. 토탈 7시간이 뭐 힘들겠냐고 하겠지만, 여기는 대부분이 비포장도로다. 차에서 디스코를 추면서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곳을 달려야 한다.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고, 창문을 열고 싶어도 달리면서 생기는 먼지 때문에 쉽게 열수가 없다.
판공초에 거의 도착할즈음, 갑자기 차들이 길가에 주차를 하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도 내려서 보니 곳곳에 땅굴 같은 곳에서 귀여운 동물이 나왔다 숨었다를 반복했다. 이 동물의 이름은 모르모트였다. 고산지역에서 산다는 이 동물은 사람들을 무서워 한다고 한다. 하지만 먹을 걸 주면 용감하게 사람에게 다가왔다. 물론 먹이를 주지 않으면 가까이 가면 도망간다.
___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염수호, 판공초
8시간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판공초에 도착했다. 말이 8시간이지 판공초를 오기 위해서 라다크를 온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델리에서 이곳까지 올라오는데 걸린시간은 무려 54시간이다. 건조한 날씨, 고산병, 최악의 도로조건을 모두 이겨내고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다.
판공초의 날씨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미세먼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청명한 하늘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의 해발은 무려 4,500미터. 우주와도 조금 가까워져서인가 하늘이 아랫동네보다 훨씬 더 깊은 푸른색을 띄었다. 지구상의 모든 청정공기는 다 이곳에 있는 듯, 보고만 있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판공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소금호수다. 판공초는 아주 먼 옛날 아시아와 인도대륙이 부딪쳐 지금의 히말라야 산맥을 만들었는데, 그 때 부딪치면서 바닷물이 함께 올라오게 되면서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염수호라면 물이 공급되는 곳이라고는 빙하말고는 없을텐데, 그래도 썩지 않고 이곳에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소금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판공초는 중국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여 사진 속 저 멀리 보이는 곳은 중국 측 판공초다.
__ 판공초를 찾은 진짜 이유
판공초는 커녕, 라다크도 몰랐던 내가 판공초를 알게 된 것은 인도에서 나온 한 영화 때문이다. 3분도 안되는 영화 끝자락에 나오는 배경이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들이 정리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지금까지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아들이었잖아요.
이번만큼은 제 입장을 들어주시면 안될까요?
주인공 란초의 절친이자, 인도 최고의 명문대 공학도였던 파르한은 아버지께 간절하게 호소했다.
돈을 조금 덜 벌어도 좋고
조금 덜 좋은 집에 살아도 좋아요.
조금 더 작은 차를 몰며 살겠죠.
하지만 저는 행복할 거예요. 아버지.
진심어린 아들의 호소를 듣고 난 후, 파르한의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응원하며, 노트북을 팔고 더 웃돈을 들여 파르한에게 카메라를 사주게 된다.
영화 <세얼간이>에서 주인공은 '란초'지만 나에게 있어 주인공은 '파르한' 이었다. 사진작가의 길을 꿈꾸고 있어서 그랬을까. 파르한의 마음에 더 깊은 공감이 갔고 그의 역할에 더 집중했다. 파르한은 평생을 부모님의 소원대로 착한 아들(?)로서 살아오며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 란초라는 천재과학자 친구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통째로 바뀌었고, 결국 그는 평소에 관심있던 동물사진작가의 길을 택했다.
사진작가가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것도 아니었고 명예롭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평론가들이 영화 속 세 명의 인도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는 것만 거론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생각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지면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란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라다크에 학교를 세워 미래 훌륭한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사회적 책임을 맡았다. 파르한은 사진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사진작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공학도가 되기 위해서 평생동안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을 무시하고 뛰쳐나가 사진작가가 되기 보다는 진심을 다해 부모님을 설득했다. 부모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헌신에 감사하며, 앞으로 더 행복한 아들이 되겠노라고 다짐했고,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얻어냈다. 종국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며 사는 그도 좋았지만 타인을 무시하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이 참 좋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라는 것이 트렌드였다. 그러다보니 옛날보다는 확실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여행을 하면서도 자주 목격 되었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여행자들의 경우를 보자.
여행을 하다가 정말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을 해야하는 순간이 있다. 돈이 없다기 보다는 수단이 없어서다. 단순히 돈을 아끼려는 여행자들이 아니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작은 것이라도 보답을 한다. 어떤 분들은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주었고, 어떤 분들은 한글을 써주는 분들도 있었으며, 나 같은 경우는 사진을 찍어 뽑아주곤 했다. 어떤 분들은 휴게소에서 내려 과자라도 사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수단의 문제가 아닌데 일부러 히치하이킹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냥 참신한 경험이 좋아서, 혹은 현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히치하이킹을 오직 돈을 아끼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다. 돈을 아끼려는 그들이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돈이 없지 않다. 어떻게 보면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자신을 세계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생계를 위해서 국내에만 있는 꼴이 아니던가. 어찌되었든 그런 사람들은 열심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 히치하이킹을 한다. 이유는 돈을 아껴서 더 오랜시간 여행을 하거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다. 목적하는 곳에 도착해서 고맙다는 '말' 은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아주 작은 감사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히치하이킹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여행자들의 모습은 많은 분야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문제는 나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정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 타인보다는 자신의 입장이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본능적으로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니까. 하지만 인간은 실수하지만, 반성할 수 있고 교정할 수 있는 존재다.
욜로, 까르페디엠과 같은 단어들이 난무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흐름이 팽배해졌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까르페디엠 (Carpe Diem)은
현재를 즐겨라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라' 라는 뜻에 가깝다. '현재를 즐겨라' 라고 오역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유명한 까르페디엠의 문구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사절이 하나 있다.
quam minimum crēdula posterō
'미래에 대한 걱정없이' 라고 번역되어 돌아다니던데 '미래에 대한 걱정을 최소한으로' 혹은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걱정만 갖고' 라는 뜻이 더 맞다. 즉 Carpe diem, quam minimum crēdula posterō 는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걱정만을 갖고, 현재에 집중하라' 라는 뜻이 된다.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집착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대비책없이 살아가는 것은 안되었다. 현재에 집중하며 순간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우리나라에서는 하고 싶은 나중에 하고,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교육받았다. 그러다보니 자기 자신보다는 사회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가 많았다.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직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러나 사회가 계속 성숙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만큼 이제는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가 트렌드였지만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주변과 함께 가세요.'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함께하지 않고는 결코 오래갈 수 없듯이,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해야했다.
정독이 우선되고 다독이 되어야 의미 있듯이,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찾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순서가 맞다고 생각한다. 나를 찾지 않은 상태로 주변사람들 생각만 하면, 착한 사람 소리를 들을 수는 있어도, 이 또한 결국 오래가지 못하니까.
'판공초'는 이후 세 친구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여 함께 만나는 장소가 된다. 굳이 판공초가 영화의 배경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함께 판공초로 온 여행자들은 '스스로가 좋아하는 여행을 하고 있지만, 이곳까지 올라오는 과정자체는 무척이나 고됐다.' 하지만 그것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고된 과정을 만나도 극복하고 싶어지니까. 그만큼 판공초는 올라오기 참 힘든 곳이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고분분투하며 싸워왔다. 세얼간이들이 이토록 어렵게 올라와야 하는 판공초에서 다시 만나는 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감독의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지만 주변을 늘 배려할 줄 알았던 그들의 모습에 감명 깊었고 나에게 있어 라다크 판공초는 그러한 청년들이 성공하여 만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판공초에 오고 싶었다. 영화 속 그들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이후 나는 또 한 번 판공초를 밟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최고의 여행지로 기억되고 있다.
판공초를 다녀온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 겉으로는 아무 걱정 없이 여행만 하던 때 같지만 늘 미래에 대한 방향성은 늘 고민됐다. 세계여행 이야기에서 계속 전하고 있지만, 내가 여행을 떠나온 것은 최소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나라를 가보는 것에 있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해 나왔다.
그랬기 때문에 1년 5개월 뒤 아프리카 남아공에 도달 했을 때 남미 쪽으로 여행을 더하고 싶었고, 더할 경제적 여유도 있었지만 미련없이 여행을 과감히 마무리 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공부를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공부만 하는 것은 잘못일 수 있다.
공부는 현장에서 써먹어야 완성이 되니까.
여행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여행만 하는 것은 잘못일 수 있다.
여행은 도피가 아닌 삶이어야 하니까.
나도 2년이라는 시간 가까이 세상을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도 여행자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단지 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할 뿐이다. 3년 전,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을 하며 여행을 했다면, 지금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현재,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대상이 바뀌었을 뿐 살아가는 흐름은 비슷하다.
많은 분들이 세계여행을 꿈꾸고 또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각자 수많은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하지만 나는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하든 세얼간이 주인공들과 같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만 생각하는 꿈은 이기적인 야망이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꿈은 비전이 된다고 믿으니까. 각자의 마음 속에 미미하지만 방향성을 갖고 타인을 배려하며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우리 모두에게 영화속 란초가 남겨주었던 이것이 가능해질 것이라 믿는다.
'알이즈웰 (All Is Well)'
___ 치킨은 사랑이다
해가 지고나니 칠흑같은 밤이 찾아왔다. 전등 따위는 볼 수 없는 곳이기도 했지만,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로 돌아다니기 어려웠다. 우리는 현지에서 살고 있는 가정집에 홈스테이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이불과 곰팡네나는 누추한 곳이었지만, 여행의 즐거움이 그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게 느끼게 했다.
아주머니께서 따뜻한 카레를 만들어주셨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무슨 맛인지도 맛있게 먹었다. 그것으로 양이 차지 않았는지 우리는 레에서 공수해온 감자와 생닭을 꺼냈다. 해병대와 특전사 출신이 두 동생이 직접 패온 장작으로 불을 땠다. 그 위에 감자와 호일에 싼 맥주먹인 생닭을 올린다. 보기에는 어설펐지만, 맛은 일품이다. 히말라야에서도 한국 사람은 치킨으로 하나가 된다. 치킨은 그래서 사랑인가보다.
새벽 녘에 은하수를 보러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미세하지만 달빛이 있어서 은하수를 보지는 못했다. 판공초의 새벽은 정말 추웠다.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이 어떤 때보다도 따뜻했던 시간이들이었다.
__ 굿바이 판공초
아침 일찍부터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따뜻한 짜이와 스크램블 에그를 준비해주셨다. 인도 땅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티벳사람이다보니, 오히려 중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편안했다. (작가는 중국에서 유학을 9년간 했다) 판공초를 떠나기 전, 우리에게 따뜻한 정감이 넘치는 하루를 제공해주었던 현지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레로 돌아간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