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불편한 마법의 땅

by 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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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 답답하고 건조하고 불편한 동네


라다크의 수도 레는 해발 3,300미터에 위치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많은 여행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레를 찾아온다. 유명한 책 <오래된 미래> 의 흔적을 찾아오는 분들도 있고, 영화의 배경지였던 판공초를 보기 위해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 밖에 종교수련을 위해서 오는 분들도 있고, 유구한 티벳의 역사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진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여행자의 입장에서 레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레는 고산지대라서 확실히 산소가 부족하다. 고산증세에 예민한 사람들은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버거울 수 있다. 나는 지프를 타고 적응하며 올라와서 비행기를 타고 한 번에 올라온 사람들보다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오르막 길을 오를 때는 호흡하기가 약간 버거웠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 돌아다니기 빡센 도시다. 하루에 한 곳만 다녀와도 몸이 나른해진다. 이유없이 피곤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장기여행자들이 그토록 오랜시간 이곳에 있는 것일까.

레는 내가 경험한 도시중 가장 건조한 도시다. 비가 거의 오지 않기도 하지만, 고산지대라 나무도 별로 없어서 도시 전체가 건조특보를 내려야 할 판이다. 빨래를 널면 2시간도 안되어 바짝 말라버린다. 빨래하기에는 기가 막힌 동네지만, 덕분에 피부까지 쩍쩍 갈라버리기 일쑤다. 로션을 덕지덕지 발라도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라다크산 히말라야 크림을 바르니까 그나마 조금 피부가 안정된다. 다른 건 발라도 소용없다. 오로지 히말라야 크림이다. 스킨로션 말고는 피부에 뭘 발라본 적 없는 사람인데, 여기서는 살기 위해서 발라야 한다.

레는 3G를 아예 허락하지 않는 도시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이 안된다는 뜻이다. 2G 통화만 간신히 하는 정도인데, 현지에서 통화할 일이 없는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모든 핸드폰은 이곳에 오면 강제로 공기계가 되어버린다. 그나마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면 간신히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정전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운이 좋으면 몇시간 후에 다시 사용가능하지만, 어떨 때는 며칠동안 먹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갈곳을 찾는 것도, 인터넷으로 비행기나 버스를 예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리 예약해오는 것이 아니라면, 이곳에서는 오프라인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할 각오를 해야한다. 인터넷 최저가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인터넷이 안되니 자연스레 할 것은 정해져 있다. 책이 있는 사람은 책을 읽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사진만 찍는다. 아무리 심심해도 의미없이 손가락 인터넷 서핑을 할 이유가 없다. 삶이 단순해지고, 해야할 것도 단순해진다. 물론 하루종일 술만 마시고 노는 술꾼들도 있다.

이토록 레는 참 답답하고 건조하고 불편한 동네다.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레를 사랑한다. 나 또한 레에서만 무려 3주라는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무엇을 경험을 한 것이 아니지만, 답답하고 건조하고 불편한 레의 특징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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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 힘들었던 동네가 내게 주었던 유익


평소에 나는 사진을 찍으러 아침부터 나가 하루종일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녀도 금방 피곤해지는 레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한 곳에만 집중하게 됐고, 많은 곳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 곳을 깊게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다. 부지런한 사람이 사진을 잘 찍게 된다고 하는데, 무조건 부지런한 것도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독이 아닌 다독은 쓸모가 없듯이, 사진 또한 많이 찍는 것보다 깊이 있게 찍는 것이 중요했다. 레에서의 생활은 깊이 있는 사진을 찍는데 도움을 줬다.

극도로 건조한 레의 날씨는 나의 피부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대를 넘어 30대를 향하고 있는 나이기도 했지만, 옛날과 다르게 피부의 탄성과 내구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레의 극단적인 날씨가 피부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해주었다. 덕분에 지금도 극성을 떨정도는 아니지만 열심히 피부관리를 하며 살고 있다.

3주동안 인터넷과 단절된 생활은 웹서핑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할 일이 많든 적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서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쓸데없이 핸드폰 서핑하니라 보내는 시간들만 줄여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을 하지 못해 무료했지만, 덕분에 그동안의 여행을 정리하는 여유를 가졌으며, 평소라면 관심도 주지 않을 곳도 찾아가보는 여유도 생겼다.

답답하고 건조하고 불편했던 이 동네에서 덜 답답하고 덜 건조하고 덜 불편하고 싶어서 아둥바둥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나에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좋은 습관을 키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사진 또한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되는대로 열심히 찍어야 실력이 는다. 불편하고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면서 시선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좋은 장비만 수백만원들여서 사놓으면 오히려 너무 편하고 할 수 있는게 많아 뭘 찍어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된다. 사진은 늘 장비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니까. 그러므로 불편함을 느끼고 극복하는 모든 시간들은 삶에 매우 유익하다.

레는 평소에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주는 마법의 땅이었다. 더 좋고 편한 것들이 많은 도시가 주지 못했던 삶의 지혜들을 레는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장기여행자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가장 진부한 질문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라는 질문에 꼭 대답을 해야한다면, 라다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는 각기 다른 이유로 좋았기 때문에, 어디가 가장 좋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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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 레왕궁 여행


마날리에서 함께 올라온 동행자들과 레왕궁을 다녀왔다. 어느 도시를 가든 도시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을 꼭 가듯이, 레의 전망을 보기에 가장 높고 좋은 곳은 레왕궁이다. 평소라면 뒷동산 올라가는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높이지만, 고산지대인만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걷다가 쉬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반복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니 레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날씨도 더 청명하게 느껴졌다. 8월이라 자외선은 강했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일몰시간이 다가오자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실내 구경이라도 해야할까하여 레왕궁을 찾았지만, 유료입장이고 생각보다 입장료가 비싸 발길을 돌렸다. 날씨는 계속 극도로 추워졌고 오랜 시간을 머물지 못하고 우리 일행은 하산을 했다.

멋진 전망을 제외하고는 딱히 쓸 내용이 없는 여행이었지만 글을 남긴 이유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아무 생각없이 보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도 지양해야겠지만, 여행을 하는 모든 곳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아무 의미없이 보내는 시간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왕궁에 대한 역사를 알고 여행을 했다면 좀 더 의미있는 여행을 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함께 한 여행이 의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 다르듯이, 어떤 이들은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고, 어떤 이들에게는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어떤 이들에게 체력적 피로를 풀었을 수 있다. 자기만의 추억을 남길 수 있고, 자기만의 의미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에게 좋은 여행이 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고 후회스럽지 않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레는 그런 곳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내게는 깊은 감동과 평안을 주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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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면 답답하고 건조하고 불편할 수는 있지만 사실 그런 것, 별로 중요하지 않다. 행복한 사람들은 핑계를 대기보다는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앞서니까. 나는 행복한 척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늘 내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묻고 답한다. 대상이 사람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아직 나는 행복할 여지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레는 나에게 그러한 깨달음을 준 마법의 땅이었다.


사진 / 글 폴작
작가블로그 walking-studio.com
작가인스타 @walking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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