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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Sep 30. 2020

#06.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

“아까는 사진 찍기 싫어했잖아?”  “아까는 당신이 누군지 몰랐으니까."

 인도의 히말라야, 라다크의 누브라벨리를 여행할 때 이야기다. 한창 사진에 재미와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시기였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한참 우스운 실력이었지만, 실제로 그 때는 그랬다.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은 잠무 카슈미르라는 지역에서 종교와 영토 등의 문제로 인해 수십년간 전쟁중이다. 그 중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전에는 한 나라였는데,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정치세력이 나뉘었고, 핵전쟁의 위협이 있었을만큼 서로에게 적대적인 나라가 되었다. 뚜루뚝(Turtuk)마을은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인도인이라기보다는 스탄사람이라는 느낌이 많은데 (중앙아시아국가들) 이유는 뚜룩뚝 마을은 현재는 인도땅이지만 이전에는 파키스탄 땅이었기 때문이다. 뚜루뚝 마을은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으로 서로 빼앗고 빼앗기기를 여러번을 반복했는데, 그로 인해 이곳 주민들은 생전에 국적이 수도없이 바뀌었다고 한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니 사회적 인프라 발전도 늦거나 정체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뚜루뚝 마을은 오지 마을이 됐다. 오지 마을치고는 아스팔트 도로가 잘 깔려있지만, 본질적으로 군사적인 목적이 더 크다. 이곳에서는 전기도 해가 지는 순간부터 차단이 된다. 핸드폰 충전을 하려면, 낮에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해놓고, 밤에는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해야한다. 밤에 전기가 되지 않으니, 데워둔 물을 다 써버리면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다. 레에서는 간간히 가능했던 와이파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완전히 바깥 세상과 차단된 채 살아야 하는 그런 곳이다.



  군대에서는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도 책을 읽는다고 했던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뚜루뚝 마을에서는 딱히 할게 없었고, 읽을 책도 없었기 때문에 사진 찍는 사람이 할 게 뭐 있겠는가. 사람들을 만나러,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섰다.



  사람을 만나기 가장 좋은 곳은 시장과 학교다. 가장 그 지역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랄까. 뚜루뚝마을은 그 흔한 시장도 없었다. 작은 구멍가게 정도는 있었지만, 사람들끼리 모여서 내다파는 시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급자족으로 돌아가는 동네 같았다. 지도에서 보니 작은 학교가 하나 있었다.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허름한 건물에 변변치 않은 시설이었지만, 나름 교복도 있고 나름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정식학교였다. 학교 내에는 영국선생님을 비롯해 서구에서 오신듯한 몇몇 선생님들이 보였는데, 자원봉사로 이곳에서 교육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고 한다. 그 중에는 도시에 사는 인도인 선생님들도 있었다. 따로 선생님들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어느 정도 기간동안 봉사활동으로 오시는 듯 했고, 교장 선생님 정도만 현지에서 살고 계신 듯했다.



  히잡을 쓰고 있는 여학생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여기가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 땅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학생들 같았다. 우리를 발견한 몇몇 학생들은 신기한듯 술렁거렸고, 몇몇 학생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학생들은 인상을 팍쓰며 우리를 피하기도 했다. 확실한 건,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것 같지는 않다.



  멀리서 나마 사진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는데, 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화를 내면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자기를 찍은 것도 아닌데, 멀리서도 찍고 있는 내 모습이 영 불쾌했나보다. 그녀는 영어로 뭐라고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것 같다. 혹시 이슬람교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건 아닐까.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았다.



   처음에 나에게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사진 찍기를 거부했던 여학생이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도 궁금한지 옆에 다가와서는 카메라 LCD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편안하고 경계심 없는 그런 순수한 학생의 눈이었다.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너무나도 찍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물었다.


사진 찍을래?


  그녀는 웃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담았다. 급하게 담니라 구도도 생각못헀다. 그 순간은 정말 그녀의 눈동자에만 집중을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잘 찍을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가장 인상깊은 사진이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까 전에는 사진을 안 찍겠다고 했는데
왜 지금은 사진을 찍는거야?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를 몰랐으니까.


  간단하고도 사소한 한 문장이었지만, 나에게는 잔잔한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싫어하지 않았다. 종교적으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법도 없었다. (코란이 있을 때는 카메라가 없었으니) 단지,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히는 게 기분이 나빴을 뿐이다.

  보통 여행자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새롭기 때문에 보는 순간 사진이나 영상을 담기에 바쁘다. 특히나 요즘은 인생샷, 인증샷 등 이미지에 열광을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이미지 한 장이 인생 역전을 시켜주기도 하고, 좋은 컨셉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미지 자체에 열광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단지, 이미지를 이용하여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내는 흐름이 문제다. 사진 한 장으로 남들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줄여서 허영심이라 부른다. 나 또한 그 허영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프리랜서에게는 허영심의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SNS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니까. 나 또한 때로는 허영심에 사로잡혀 다른 여행자들처럼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는 의미다. 
 
  사진찍는 사람이 허영심에 사로잡히면 찍히는 사람, 혹은 찍히는 피사체에 대한 고려보다 우선 찍고보자는 생각들이 강해진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온 삶과 비슷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없이, 우선 학교를 졸업하고보자, 우선 자격증을 따고보자가 앞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 교육의 폐해일수도 있겠다. 동기나 의도보다는 막연하게 그럴듯해보이는 결과를 강조하고 중요시하는 교육말이다.

  나는 이 때까지 기술적으로 잘 찍어야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엘리트 코스를 잘 받아온 사람이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촬영테크닉과 보정테크닉이 좋은 사진들을 보면서 늘 환호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날 이 학생으로부터 좋은 사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 아니었다.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그 사진을 담았는지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술적으로 인물사진을 잘 찍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술은 배우고 익숙해지면 되니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니까.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당연하고, 상대에 대한 공감과 해석력이 인물사진을 담는데 본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그날 밤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피사체를 대해야할지 돌아보게 했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는 나에게 이렇게 재해석되어 들렸다.


당신이 사진을 잘 찍는 것은 우린 관심이 없어.
그보다 우리를 이해해주는 마음이 더 중요해.
(그래야 인물사진을 잘 찍을 수 있어)


사진 / 글 이정현


#사진의본질

#좋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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