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의 사막은 단순히 뜨겁지 않았다.
해외인턴으로 간 쿠웨이트의 온도는 공기보다 관계를 먼저 말려갔다.
새벽 다섯 시 반에 기상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아침 식사를 마치면 오전 일과가 시작되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 올라온 뒤에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후 작업을 이어갔다. 하루는 길었지만,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짧았고, 때론 없었다. 그곳에서는 일과 생활, 역할과 감정이 명확히 분리된 채 움직였다.
1) Fabrication Shop — 말은 있었지만, 소통은 없었다
내가 배치된 곳은 Fabrication Shop이었다. 한 명의 인도 관리자와 필리핀 노동자들이 있었다. 한국인 관리자가 작업을 지시하면 인도 관리자가 전달했고, 필리핀 노동자들은 묵묵히 그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 세계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이해가 안 되네. 왜 시킨 대로 안 하지?”
“저 사람 바꿔야겠다.”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설명을 덧붙이는 사람도 없었다. 업무는 흘렀지만, 관계는 멈춰 있었다. 어느 순간 느꼈다. 이곳에서는 ‘소통’이 아니라 ‘명령’이 구조였다.
2) 점심시간,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았다
긴 근무 시간 중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순간은 점심이었다. 그러나 식탁에는 침묵이 있었다. 사람들은 밥을 먹었고, 휴대폰을 봤고, 불꺼진 사무실로 돌아가서 낮잠을 취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풍경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해도, 사람 사이도 이렇게 흘러가야 할까?’
그 질문은 오래 남았고, 결국 행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점심을 먹고 작업장을 자주 방문했고, 노동자들과 작은 교류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특별한 목적도, 대단한 계획도 없었다. 그저 “조금 따뜻한 분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였다. 간단한 과자 몇 가지와 서로 취미나 가족 이야기를 묻는 아주 단순한 방식이었다. 처음엔 어색했고 반응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한 사람씩 참여자가 늘었고, 어느 순간 웃음이 생겼다. 그때 알았다. 그들은 무뚝뚝해서가 아니라, 한국인과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작은 시도는 그 공간의 긴장을 아주 미세하게 바꾸고 있었다.
3) 소속과 동조는 같지 않았다.
반대로 한국 직원들과의 관계는 장벽이 있었다. 퇴근 후에는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하루의 피로와 답답함을 풀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그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바깥쪽’에 서 있었다.
그들은 술을 통해 소속감을 확인했고, 나는 그 의식이 나를 포함시키기 위한 진심인지, 아니면 익숙한 방식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했던 것은, 그들이 외로운 이유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둘 곳이 없어서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조직에 있었지만, 그 문화에 섞이지는 못했다.
그 문화는 나에게 말없이 요구했다.
“우리는 이렇게 친해지고, 이렇게 버티고, 이렇게 연결된다.”
내가 동조한다고 해서 소속되는 건 아니었다.
4) 그동안 알지 못했던 ‘조용한 리더’를 만났다
모든 사람이 명령형 리더십을 가진 건 아니었다.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 이 업계의 현실과 어려움을 그리고 그분의 경험을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던 한국인 팀장이 있었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도 언제나 식사만 하고 조용히 일어났다. 술에 의존해 하루를 버티려던 누군가가 “나는 서울대 나왔어.”라고 반복하던 그 현장에서, 그는 술 없이도 관계를 유지했고, 강요 없이도 리더십을 잃지 않았다. 누군가를 앞에서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권위는 목소리가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 앞에서 나는 처음 깨달았다.
리더십은 직책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5) 떠나는 비행기 안, 그리고 남은 문장
8주의 인턴 기간이 끝날 무렵, 필리핀 노동자 몇 명이 내게 말했다.
“다음에 정식으로 오면 꼭 다시 일하자. 너 같은 사람이랑 일하고 싶어.”
그 말은 내가 무언가 대단한 변화를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시도한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경험은 지금도 나를 멈추지 않게 한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조직은 명령으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일까?”
시간이 지나며 그 답은 조금씩 형태를 갖추었다. 사람은 지시로 움직일 수 있지만, 마음은 존중으로만 열릴 수 있다.
그리고 변화는 거대한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한 사람이 존중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쿠웨이트에서 나는 결심했다.
언젠가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없다 해도,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가장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Epilogue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를 바꾸려 하기보다, 먼저 나를 이해하려 했던 것 같다. 조직의 방식, 문화의 차이, 일하는 속도와 언어가 모두 낯설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관계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빠르게 바꾸려 하기보다, 함께 변화할 방법을 고민한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