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앞에 선 신입의 판단
나는 정해진 자리에 서 있었다
취업의 문을 열고 2018년 대기업에 들어왔다. 처음 한 달간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은 지나갔다. 조직은 언제나 변할 준비를 한다고 했던가. 입사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기구개발팀에서 갑자기 신제품 개발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적응할 때 즈음 새로운 팀으로 옮기니 어안이벙벙했다. 새로운 팀은 기구파트, 회로파트, SW파트가 한 팀이 되어 움직였다. 기구는 파트장, 경력사원 2명, 신입사원 3명으로 총 6명이었다. 나중에서야 느꼈지만, 신제품은 업무량이 워낙 많아 기존 직원들은 오지 않았었다. 신입사원인 나는 조직으로부터 그저 주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배우기 전에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파트장은 직접 개발해본 경험은 오래되었고, 경력사원 2명은 사내 시스템을 잘 몰랐으며 우리 3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는 맨땅에 부딪히며 개발했으며 모르면 다른 팀에 가서 물어보거나, 실수하면서 배웠어야 했다. 그래도 동기가 있으니 힘들어도 서로 큰 의지가 되었다.
파트장은 팀장이 퇴근하기 전까지 항상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어른(실장 이상)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힘을 쓰는 사람이었다. 우리 파트는 매일 오전 9시 반마다 모여서 업무 진행 상황을 체크했는데, 파트장은 한 시간이 넘도록 우리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안 했는지 질책했다. 그는 그 세대가 배운 대로 우리에게 채찍질했다.
‘이건 왜 못했어.’ ‘어제 몇 시까지 했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지.’ ‘초등학생도 이것보단 잘하겠어.’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만 남아 있었다
그는 자주, 자신 밑에서 사람들이 떠났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꺼냈다. 그 말은 나에게 주는 경고였고, 동시에 이 팀의 미래에 대한 예고처럼 들렸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1년쯤 지났을 때 경력사원 책임님께서 가족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면서 퇴사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동기 한 명은 열해석 직무의 기회가 왔을 때 바로 탈출했고, 다른 동기 한 명도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 사이 경력사원 1명과 신입사원 1명이 보충되었다.
1주일간 교육을 다녀와야 진급할 수 있던 경력 선임은 교육 1달 전부터 파트장의 눈치를 받았다. 그나마 일을 하는 사람 한 명은 항상 남아있어야 마음이 편하셨던 건가. 결국 교육 직전에 터졌다.
‘너는 왜 눈치를 줘도 이해를 못 하냐. 자리 비우지 말아라’
결국 그 선임은 좋은 고과를 받는 대신 진급누락을 하게 되었다. 서로 적절한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아 있기로 한 쪽을 선택했다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이 옳은지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성장을 위한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직을 보는 순간, 공기는 조금씩 굳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성과를 관리해오던 익숙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신입사원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남아서 버티거나, 떠나거나. 돈을 적게 벌어도 일을 많이 해서 배울 수 있다는 내 가치관은 나를 이 자리를 지키게 했다. 버티면 언젠가 보상이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동기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나갔고, 몇몇 선후배들도 같은 선택을 했다. 그사이 나는 묵묵히 나의 일을 했다.
이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적어도 언젠가의 내가 이 시간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