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문제인가, 조직의 합리적 선택인가.
1. 우리는 이미 구조 안에 있다.
대기업 회사원은 진취적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다니는 대학생과는 확연히 다르다. 조직은 이미 구조화되어있고 나는 그중에 일부로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한다. 저년차인 내가 능동적으로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회사는 나에게 펀딩을 하지 않으며 조직을 꾸려주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 당장 개발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한다. 이 구조 속에서 왜 개발자들은 서로를 탓하게 되는지 들어가보려 한다.
제품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Q(Quality 품질), C(Cost 비용), D(Delivery 일정)다. 품질을 올리기 위해 비용이 늘어나고 일정이 지연될 수는 없으며, 일정을 맞추기 위해 품질을 포기할 수도 없다. 밸런스를 유지하며 최적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엔지니어의 역량이다. 이를 맞추기 위해 회사에서는 수많은 검증 프로세스와 게이트가 정해져있고 그 허들은 잘 넘어야만 한다.
2. 보고가 시작되면 일이 달라진다.
이러한 개발은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최대의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경험한 개발조직은 하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개발 초반은 비교적 조용히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개발 말미가 되어 QCD 중심의 윗선 보고가 다가온다.
일정이 지연되면 반드시 사유가 보고되어야 한다. 이때 ‘아’는 ‘어’가 되어 보고된다. 회로팀의 PL(Project Leader)이 보고할 때면 기구와 SW의 문제를 먼저 드러내고 지연되는 김에 회로 품질도 개선 시키겠다고 보고한다. 회로팀의 문제는 드러내지 않으며 물밑에서 조용히 작업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로 회로의 문제가 드러나면 기구가 물밑작업을 할 때도 있다. 보고를 잘 넘어가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 팀은 보고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 맞을 때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 순간부터 보고는 사실 전달이 아니라 책임의 방향을 설계하는 작업이 된다.
3. 남탓과 침묵은 선택이 된다.
이 조직에서 리더십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책임을 피해가는 능력으로 측정되어 보인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해결 방법보다 ‘누구 책임이 아닌지’를 먼저 정리하게 된다. PL의 역할은 조율보다는 일정 확인으로 축소된다. 보고할 때면 현 이슈들은 본인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작업으로 분주하다.
회사에서 가장 빨리 배우는 생존 기술은 “내 문제를 먼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해결하되 기록에는 남지 않게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구팀 내부에서는 다른 모델이지만 하나처럼 도와주고 행동한다. 팀원의 모델에 문제가 생기면 대신 일부라도 해결해주고 그러기 위해 평소에 어떤 업무를 하는지, 어떤 단계에 있는지 서로 관심을 둔다. 같은 사람들이 어떤 구조 안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다.
4. 남탓의 합리적 이유.
개발팀 간 남탓 문화는 개인의 태도나 협업의식의 문제로 설명되기 쉽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현장은 조금 달랐다. 이건 누군가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설계된 구조의 결과였다. 개발 말미, 보고를 앞두고는 문제를 먼저 드러낸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업무를 관리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그 결과 개발자는 문제를 숨긴다. 정확히는 기록되지 않게 해결하려 한다. 회의록은 남기지 않으며 품질팀 모르게 라인에 가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문제의 출처를 관리하는 능력이 조직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 치르는 비용은 크다. 유능한 개발자의 시간은 설계와 학습이 아니라 정치와 방어에 쓰인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사람들은 점점 문제 해결보다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더 잘 배우게 된다.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묻는다.
내가 바라는 조직은 거창하지 않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묻기 전에 언제부터가 신호가 있었는지를 묻는 조직, 개발 말미가 아니라 개발 중간에 불편한 이야기를 해도 불이익이 되지 않는 조직이다. 그런 곳에서는 남탓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가장 먼저 드러낸 사람이 가장 유능한 개발자가 된다.
조직문화는 “위기를 기회로”와 같은 구호로 바뀌지 않는다. 사람을 바꾸기 전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 남탓이 만연한 조직이라면 그 문화가 잘못됐다고 말하기 전에, 왜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는지를 먼저 묻고 싶다.
이 글은 남탓을 멈추자는 선언이 아니라, 남탓이 합리적인 문화가 되지 않도록 구조를 묻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