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럭 뒤에 남는 것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퇴근하고 몸이 피곤한데 아이에게 씻자고 여러 번 말해도 안 들을 때. 해야 할 집안 일은 쌓여있는데, 옆에서 계속 놀아달라고 메달릴 때. 둘째가 자지러지게 울어서 달래야 하는데 동시에 첫째가 옆에서 책읽어달라고 잡아당길 때.
이럴 때 나는 종종 아이 이름 석 자를 또렷하게 부른다.
그렇게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미 내 목소리엔 화가 섞여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눈을 치켜뜨면서 째려보고는 "아빠 저리가!" 하고 침실로 들어가 방문을 닫고 누워서 혼자 마음을 삭힌다. 나도 상기된 표정으로 "누가 째려보고 문 닫으래!" 하면서 다그친다.
오늘도 화내고 방에 들어가서 인형에게 위로받는 아들의 화를 풀어주려고 했지만 아들이 하는 말은 마음을 아리게 한다.
"아빠 저리가! 혼자 있을거야!"
그 말 앞에서 나는 한순간 멈췄다.
'그냥 혼자 삭히다 나오겠지' 생각하다가도,
마음의 벽은 4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감정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의 뇌가 움츠러들고 사고의 유연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화내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아이와 거리가 생긴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내 감정에 휩쓸린 못한 하루를 돌아본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가 잠들기 전에 더 위로해줬다. 전래동화도 들려주고 작은별과 섬집아기 노래를 불러주며 잠들기까지 토닥여준다.
"아들, 오늘 아빠가 소리질러서 미안해"
"아빠가 소리지르면 눈을 (째려보며) 이렇게 보는거야"
어쩌면 연약한 아이가 절대적인 엄마아빠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절박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랑 더 놀고 싶어서 그랬던건데, 화를 내는 아빠를 보고 싶지 않아서 째려보는건데, “내 마음 좀 알아줘!” 라는 표현인 것 같다.
내일은 더 놀아주고,
더 안아주고,
더 사랑해줘야겠다.
아들, 오늘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
아이에게 쏟아낸 감정은 아이의 마음에 담긴다.
생각해보면, 아이 뿐 아니라 우리가 관계 맺는 모든 사람도 그렇다.
말 한 번, 표정 한 번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버럭하기 전에 3초만 숨을 쉬어보기로.
그 3초가 벽을 허물고 마음을 이어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