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에서 권위에 질문했다.

복종 앞에서 질문을 꺼내 들었다.

by 걷는 아빠
군대는 누구에게나 규율과 복종을 요구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오히려 ‘조직’이라는 것을 깊게 배우기 시작했다.
부조리한 관행 앞에서 “왜 그래야 하는가?”를 묻는 순간, 군대는 나에게 권위주의 리더십의 한계와 진짜 리더십의 의미를 보여주었다.
그 질문들은 결국 내가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까지 연결되었다.


1) 군대에서 나는 ‘왜’를 묻는 병사였다

군대에서 나는 자주 “왜 그래야 하는가?”를 묻는 병사였다. 물론 일과시간 내에서 규율과 상명하복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식사 후 선임들의 식판과 수저를 닦아주기, 훈련 후 선임들 빨래하기, PX에서 냉동식품은 일병 이상, 노래방은 상병 이상만 사용 가능 등 개인의 평등과 자유를 침해하는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서는 늘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래야 하는가?”




2) 리더십이 부재할 때 위계만 남는다

마음의 편지를 쓰는 시간이 되면 특정 선임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부대장님께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적었다. 이 조직에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고.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가 폐지된 지 오랜 시간이 되었지만, 관행으로 남아있듯 리더십이 부재할 때 생기는 위계는 병영문화를 해치고 소통을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글을 작성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당연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1시간가량 남아있는 나를 본 선임들은 나를 경계하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당한 만큼 후임도 해야 한다.’고 믿던 맞선임은 나와 말을 섞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하지만 우리 동기들을 기점으로 병영문화는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부조리한 문화는 줄고, 후임병들의 병영생활 의견을 들을 창구도 만들었으며, 레크레이션을 기획해 선후임간 벽도 낮아졌다.




3) 불합리한 지시와의 충돌 – 분리수거 사건 & 염화칼슘 사건

이등병 시절 2종 창고를 담당할 때의 일이다. 창고에서 나온 쓰레기를 큼지막한 박스에 모아놓고 막내가 분리수거를 해야 했는데, 플라스틱·종이·일반쓰레기·캔 등이 뒤섞인 채로 들고 가서 버리는 것이 몹시 비효율적이었다. 창고 내 분리수거 시스템을 만들고 담당 중사에게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왜 하던 대로 안 하고 마음대로 하냐”라고 한 소리를 크게 듣고는 다시 큰 박스를 놔두는 것이다. 이등병인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에서는 답답함을 누르고 조용히 지나갔다. '효율보다 관행이 더 중요하다면 이 조직은 발전할 수 있는가?'


어느덧 전역을 앞둔 병장이 되었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개선된 병영문화를 지켜온 선임으로서 후임들이 제설작업 하는데 빠질 수 없었다. 나가서 후임들을 지휘하고 작업하고 있었다. 보통의 제설작업은 빗자루와 눈삽으로 치우고 마지막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 중사가 대뜸 와서는 빨리 끝내고 싶은지 주차장에 염화칼슘 두 포대를 다 뿌리라는 것이다. 과도한 염화칼슘은 차를 부식시킬 수 있다고 두 차례 얘기해 드렸지만, 돌아온 건 ‘왜 내 말을 듣지 않냐’는 고함이었다.


“예, 그럼 뿌리십시오” (2016년은 다나까를 사용했기에 파격적인 말투였다)

“뿌리십시오? 다나까 안 써?”

“뭐 문제 있습니까? 국립국어원 강연에서 십시오체도 공손한 존댓말이니 군대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교육받았습니다”

“장난하냐?”
“아닙니다. 사실 그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다음 날 대장님께 불려 가서는 중사가 영창 보내라는 걸, 본인이 막았다고 하시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전역 후에 동기들과 후임들을 보러 부대를 방문했었는데 나랑 마찰이 있던 간부는 휴가를 낸 것을 보고 씁쓸한 웃음이 났다. 분명 나는 그들에게 쉽지 않은 병사였고, 그래서 더 잊고 싶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4) 그럼에도 사람과의 관계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내 방식에도 날카로움은 있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행동하는 편이었기에 선임들과 간부들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과의 관계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선후임들과 연등시간에 영어스터디를 만들고, 초소 근무 때는 조용히 마음에 있는 이야기 나누면서 관계의 균열을 메워갔다.




5) 군대에서 배운 조직의 본질

돌이켜보면 군대는 내가 처음으로 ‘조직’을 깊이 관찰한 공간이었다. 극단적인 권위주의적 환경 속에 있으면서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조직의 역량이 발휘되려면, 통제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가 적절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자유는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조직의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군대라는 조직은 특성상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빠른 지휘와 통제에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복종’은 만들지만 ‘신뢰’를 만들지 못한다. 조직은 움직이지만, 사람은 비어 간다. 그리고 빠른 지휘는 단기성과(정비, 공정 속도, 효율 개선)에는 유리하지만, 현장의 전문성과 합리성이 무시되면, 조직은 더 큰 리스크를 떠안는다. 염화칼슘 사건이 그랬다.

나는 그때 알았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질서는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을 억누르면 침묵이 생기고, 침묵이 쌓이면 성장은 사라짐을, 권위는 사람을 성장하게 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조직을 움직이는 리더’가 아니라

‘사람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리더’가 되고 싶다


나는 현조직에서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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