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에 남은 밥

하루의 사랑은 늘 번듯하게 차려진 식탁 대신, 누군가가 남기고 간 자리

by 걷는 아빠

아침은 언제나 비슷한 결로 흘러간다.


출근하는 아내가 서두르는 발걸음을 뒤로하고, 나는 두 아이 사이에서 하루의 첫 전쟁을 치른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다가오는데 첫째는 여전히 밥을 느긋하게 씹고 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새는 것인지 식판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그 사이 둘째는 배가 고프다며 보채고, 안아달라고 팔을 뻗고, 어딘가 불편한지 몸을 비틀며 우는 소리를 반복한다. 그 작은 몸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의 파도에 나도 모르게 호흡이 빨라지고, 등 뒤로 시간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빨리 먹자.”


말은 다정하게 나오지 않는다. 되도록 목소리를 낮추려 노력하지만, 조바심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첫째는 내가 내는 그 억눌린 음색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숟가락을 들던 손이 잠시 멈추고, 눈이 조금 흔들린다. 그 순간이 제일 힘들다. 아이를 다그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현실적으로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뒤엉켜, 말끝마다 내 속이 먼저 상해버린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해 더 서둘러 움직인다. 옷을 갈아입히고, 가방을 채우고, 신발을 신기고, 둘째를 안아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과정은 언제나 작은 전투처럼 지나간다.


등원시키고 돌아오면 집 안은 아직 아침의 흔들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식탁 위엔 첫째가 먹다 남긴 식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차갑게 굳은 밥알과 미역국이 말라붙은 가장자리, 힘없이 뒤집혀 있는 숟가락. 나는 커피 한 모금도 못 마신 채 그 식판 앞에 앉는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장면들이 서글펐다. 누군가가 먹다 남긴 자리에서 내 하루의 첫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잠시 살아온 삶의 질서를 지워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 구겨지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의 결이 조금씩 바뀌었다.
식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방금 전까지 그 자리에 아이가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조용히 떠오른다. 서툴게 숟가락을 들고, 밥알 하나를 떨어뜨리며 나를 바라보던 작은 얼굴. 내가 보채던 그 순간조차 아이에게는 그냥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 생각이 들면, 굳어버린 밥알조차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불편한 흔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보낸 아침의 온도가 묻어 있는 자국처럼 느껴진다.

예전의 아침은 언제나 단정했다.


혼자였을 때는 식탁도 말끔했고, 커피는 따뜻했고, 일정은 계획대로 흘렀다.
그때의 아침은 분명 편했지만, 묘하게도 공기가 비어 있었다.


지금의 아침은 엉망이다.


정신없이 흘러가고, 계획은 늘 틀어지고, 먹다 남은 밥알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하루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엉망 속에서, 이전에는 없던 어떤 온기가 남는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다는 사실이 조용히 식판 위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남은 밥알을 물에 불리며 천천히 식판을 씻는다. 국물 한 모금으로 허기를 달래고, 제대로 씹히지도 않는 밥을 넘기며 문득 생각한다.


사랑은 때때로 이렇게 형편없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흘리고 남긴 흔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자란다는 것을.


오늘의 첫 끼니는 결국 첫째가 먹다 남긴 식판 앞에서 끝났지만,
그게 이상하게도 내 하루를 다시 세우는 시작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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