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은 건 머리카락이었지만, 마음에 남은 건 사랑이었다.
아이를 씻기고, 나도 씻으려 화장실에 들어간다.
배수구 근처에 머리카락이 엉켜 있다.
두루마리 휴지를 세 번 감아 손가락에 끼우고,
젖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집어 올린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언제나 불쾌하다.
물이 막히면 성가시고, 그 모양새도 썩 보기 좋지 않다.
치우며 괜히 마음속으로 투덜거린다.
‘이걸 왜 또 내가 해야 하지.’
아무도 듣지 않지만, 그런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요즘 하루는 길고, 밤은 짧다.
아내는 출근하고,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낮에는 울음과 기저귀, 밤에는 재우기와 젖병.
그 사이에 나 자신은 조금씩 뒤로 밀려난다.
거울을 보면 피곤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이가 자라가는 속도만큼, 나는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날도 별생각 없이 머리카락을 치우다,
문득 손이 멈췄다.
그건 아내의 머리카락이었다.
출산 후 빠진다는, 그 머리카락.
그 순간,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단순히 지저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머리카락에는 아내의 시간과 피로,
그리고 버티며 살아가는 하루가 엉켜 있었다.
아내는 매일 아침 아이를 한번 꼭 안아주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한다.
퇴근 후에도 잠든 아이 옆에 잠시 앉아 하루를 정리한다.
그녀에게서 빠지는 건 머리카락만이 아닐 것이다.
체력, 여유, 예전의 자신감, 그리고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까지.
그 생각이 스치자,
내가 잡고 있던 머리카락의 감촉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이건 단순한 청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대신 정리해주는 일,
서로의 피로를 조금 덜어주는 일,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여전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젠 다르게 느껴진다.
손끝에 닿는 머리카락은 여전히 축축하고 거슬리지만,
그 속에 담긴 삶의 조각들이 조금은 소중하게 느껴진다.
빠지는 건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다.
힘도, 여유도, 우리라는 감각도
하루하루 조금씩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남는다.
아기의 웃음,
조용히 건네는 눈빛,
서로의 수고를 알아보는 마음,
그리고 여전히 함께 버티고 있다는 사실.
오늘도 화장실 문을 열면
배수구 근처에 머리카락이 엉켜 있다.
나는 잠시 멈춰 선다.
한숨이 섞인 숨을 내쉬고,
두루마리 휴지를 세 번 감는다.
그리고 천천히,
배수구를 막고 있는 긴 머리카락 한 웅큼을 치운다.
그 속에서 오늘의 나를, 그리고 우리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