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입이라는 큰 도약을 했지만, 마음은 늘 전공 밖에 머물러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막상 전공 수업을 들어보니 ‘적응하며 살 수 있겠지만 내 가슴이 뛰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다.
1학년을 마치고 느닷없이 1년을 휴학하고 자메이카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를 더 알고 싶어서’, ‘세상을 더 알고 싶어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타지에서 살아보니, 비로소 내 진짜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배웠다. 그 시간은 이후의 나를 만들어준 결정적인 한 해였다. 기회가 되면 방대한 1년의 이야기도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귀국 후에는 해외봉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개발 컨퍼런스를 3년간 기획했다.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고 실행까지 옮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교육’과 ‘문화’가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동남아 초등학교에서 한국문화를 나누었고, 인성교육으로 이어진 프로젝트도 하고, 러시아에서는 어둡게 살아갈 수도 있는 청년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레크레이션을 기획하고, 터키에서도 대학교 총학생회와 연결되어 한국의 날 행사를 기획하며 한국이 발전할 수 있던 역사를 소개했다. 아프리카 에스와티니에서는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인성교육도 했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을 주었다.
또한 내면 깊숙이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목받는 게 좋았지만 점점 그 자리가 ‘사람을 잇는 무대’라는 걸 깨달았다. 1학년 때는 학과 학생회를 통해 문예선동이라는 댄스를 배우며 동기들과 호흡을 맞추고(노동권의 노동요를 바탕으로 만든 몸짓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해외봉사 단체에서는 인도, 아프리카 등의 문화공연을 배우며 언어가 달라도 몸짓으로 마음이 통하는 걸 느꼈다. 해외봉사 워크샵과 캠프에서는 사회자로서 수백 명의 관중 앞에서 섰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눈빛과 마음으로 전하는 공감이었다. 나는 무대 위에서 표현의 기쁨보다, 소통의 힘을 배웠다.
대학 시절 내내 ‘사람이 변화하는 순간’을 보는 일이 좋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학번 대표를 하고, 2-4학년은 해외봉사 단체에서 서울지역 회장, 전국총학생회장을 이어가며 3년간 활동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었냐고 물어보면 얻지 못했다고 대답하겠지만, 마음을 잃을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았다.
활동하다 보면 의견이 부딪힐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동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한껏 낮춰야 했다. 내가 리더로서 옳다고 주장할수록 사람을 잃었고, 불편하더라도 끝까지 그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어두웠던 이들이 조금씩 밝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낮은 자세로 귀 기울이면 남들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풀려갈 때마다 '마음의 문이 열리는 힘' 을 알게 되었다.
교육에도 관심이 있었다. 1학년부터 이어진 과외를 통해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바꾸고 싶어서 대안학교 수학교사를 1년간 했다.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이 조금씩 마음을 열 때 수학 공식보다 더 큰 기쁨을 느꼈다. 학생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업이 아닌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인성-레크레이션을 직접 기획해 양주청소년수련원에서 두 차례 진행했다. 학부모님들의 뜨거운 반응이 잊히지 않는다. 마음이 멀었던 자녀를 이해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에서,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순간’을 또 한 번 보았다. 곧 군입대로 이어지며 아쉽게 멈춰야 했지만, 그때의 열정은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렇게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결국 현실의 벽 앞에 섰다. 돈이 필요했고, 이상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전공에 맞춘 취업의 길을 택했다. 관심사와 경험으로는 당장 돈을 벌 수는 없었다. 대학 시절 나는 내면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이 경험은 취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 당시 취업과정은 서류-인적성-직무-인성면접으로 이어졌다. 공학 기반 직무로 입사 지원을 하다 보니 서류와 인적성검사를 통과한다 한들 직무면접에서 전공/직무 관련 프로젝트나 지식을 물어보며 학점이 낮은 나로서는 대답하지 못하는 내용도 부지기수였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한 2개의 회사 중에 수도권에서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그렇게 내 관심사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
나의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사람과 교육, 세상에 관한 관심이 남아있다. 그때의 나는 ‘살기 위해’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길에서도 나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며 살아간다. 공대생이었던 나의 길은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