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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 나무 Jan 28. 2024

죄인으로 살다

40년간의 죄인





 바람에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의 모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 멀리서 바다는 하늘과 함께 흐른다. 그러다 어느샌가 파도를 일렁이며 모래사장까지 밀려와 겹겹이 쌓으며 사라져 간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멀미가 났다. 파도가 일렁이듯 언제 생겨 난지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어느새 내게 밀려와 두려움인지, 설렘인지도 모를 두근거림을 남기며 사라지곤 했다. 바람에 일렁인 건 바다가 아니라 내 마음인 건가?




   난 섬에서 태어나 9살 때까지 섬에 살았다. 여름방학이면 손발바닥만 빼고는 새까맣게 될 때까지 바다에 살다시피 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는 당부는 까먹기 일쑤다. 그때마다 빗자루를 머리 높이 들고 나오는 어머니를 피해 도망쳤지만, 매번 잡혀서 많이도 맞았다. 그래도 다음날 또 까먹고 혼나는 게 일이었다. 어떤 때는 도망치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셨다 저녁에 들어오시는 아버지와 만나기라도 하면, 구세주라도 만난 듯 뒤에 숨었다. 아버지 앞에서 순한 양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저 걱정되는데 늦게 들어왔다며 대신 혼을 내달라고 하실 뿐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지만 태풍이 오면 밤새 무서워 벌벌 떨며 잠을 자지 못했다. 지금도 비바람이 부는 밤이면 잠을 설친다. 바다는 이렇게 내게 여러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


  표면 위 작은 빈틈도 없이 조밀하게 가득 차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도, 빠져나올 수 도 없을 것 같은 바다를 바라볼 때면 빨려 들어갈 것은 기분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뒷걸음치게 된다. 그 기분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아마도 바다게 삼켜서 5살에 생을 달리 한 오빠가 생각나서 그럴 수도.

 

  집 앞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바다에 빠졌단다. 나도 같이 놀고 있었다고는 하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난 3살이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그날 사건의 책임을 내게 돌린다. 내가 알렸다면 살릴 수 있었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사실 나는 평생 그렇게 믿고 살았다.  40년간  죄인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작년 지인의 3살 아이를 보고 나서 알았다. 이제야 걷고 뛰고, 고작 울고 떼쓰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할 때다. 사건 현장에서 스스로 위험성과 급박성을 판단하고 알릴 수 없다. (그저 어머니는 남 탓을 해서라도 자식의 죽음에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남은 자식이 있으니 죽은 자식을 따라갈 수도 없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그 방법이 책임 전가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게 책임을 떠 맡긴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전히 부모님은 그 섬에 살고 계신다. 자식을 잃고도 떠나지 못하고, 남은 자식을 키우며 그저 누구의 책임도 아닌 책임을 짊어지고서 살아내야 했던 삶이었다. 나는 이제 그 책임을 내려놓았다. 내 것이 아닌 책임으로, 죄인으로 40년을 살았으면 충분하다. 솔직히 억울하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서 그 아픔의 깊이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도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 사건은 누구의 잘못도, 책임도 없었다. 그저 그때 그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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