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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 나무 Jan 20. 2024

제철음식이 뭐라고

굴밥



   난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편이다. 제철 음식을 놓쳐서 못 먹기라도 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을 인사도 없이 보내 버린 것 같아 섭섭함을 넘어 서운하기까지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 굴이 나오기만을 기다려 굴밥을 먹으러 다. 식당에 들어서자 테이블이 굴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가득다. 대기명단을 등록하려고 "두 명이요."라고 하니, "150번째 순서인데요, 2시간 정도 소요될 수도 있어요. 괜찮으시겠어요?"라고 친절하게 물으신다.


'와~! 나처럼 제철 음식에 진심이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지만 나도 질 수 없지!'


"네! 등록할게요!" 말하며 핸드폰 번호를 적는다.

등록하면서도 "괜찮으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나의 질문도 더해진다.

'3시간이나 걸려서 왔는데 못 먹고 가면 어떻게 하지?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괜찮겠어?'
'기라리면 먹을 수는 있는 거겠지?'
'굴이 없어서 내 앞에서  솔드아웃을 외치면 어떻게 하지?
'당연히 간재미무침도 시켜야겠지?'


대기명단에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놓고 차로 가려고 다시 식당문을 열고 나왔다.

아직 해가 떠있는 낮인데 한파특보로 영하 5도의 날씨바닷바람까지 매섭게 얼굴을 때리니 몸이 정신을 못 차리고 오들오들 떤다.


주차장으로 가는데 식당 옆으로 굴작업이 보였다. 활어차로 실어온 굴을 내려놓거나, 세척을 하고 또 한편에서는 굴을 깐다. "작업장이 옆에 있으니 솔드아웃은 안 되겠다!"며, 괜스레 큰소리를 쳐본다. 사실 속으론 멀리까지 왔는데 못 먹고 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장을 본 순간 걱정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굴밥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나게 차에 탄다. 차에 타서 보니 썰물 때라 갯벌이 멀리까지 드러나 있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있던 바닷물이 얼어 있었다. 저 멀리 굴양식장이 보인다.


한겨울에만 육지로 올라오는 바다에 사는 굴은 알까?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육지에서 일 년을 기다렸고, 심지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다를 얼리는 눈보라뚫고 왔다. 심지어 오롯이 너만 채우기 위해 아침밥굶기까지! 덕분에 먹을 것을 달라고 꼬르륵꼬르륵 아우성치는 배를 부여잡고, 안 들리는 척 2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생각이 들자 '철음식이 뭐라고 나도 참 어지간하네'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가만히 얼어붙은 차가운 바다를 보고 있자니, 어머니 심부름으로 김장김치에 넣을 굴을 구입하러 아버지와 굴양식장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한파로 바닷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이었다.


굴양식장이 가까워질수록 길 양옆으로 어지럽게 굴알맹이 빼앗긴 굴껍데기가 내동이쳐있었다. 차 타이가 상할까 봐 굴껍데기가 적은 평평한 갓길에 차를 두고 걸어가기로 했다. 서너 개의 작업장에선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중 젤 안쪽에 자리한 작은 작업장으로 갔다.


능청스럽게 인사말을 건네며 굴을 사러 왔다며 이야기를 나누신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딸아이가 먹고 싶어 해서 왔다고 많이 좀 넣어 달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은 어머니 심부름이지만, 자식이야기에 약해지는 게 부모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가격흥정으로 나를 쓰시는 모양이다.


 굴작업으로 바닷물에 손이 오랫동안 담겨 불었을 터인데, 검버섯으로 뒤덮이고, 피부가죽이 손가락뼈에 빠짝 달라붙어서 핏줄이 도드라진 손은 저울질을 위해 까놓은 굴을 바가지로 연신 퍼 올렸다. 그리곤 머리도 들지 않은 채로 내게 말을 던진다.


“굴 사주는 아버지가 있어서 좋구먼" 하고. 그래서 난 "굴 양식하시니 자식들한테 많이 보내 줄 수 있지 않나요? 자녀분들은 좋겠어요"라부럽다는 듯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같은 자세로 대화를 이어가신다.


할아버지께서 젊어서부터 편찮으셔서 병원비도, 생활비도 혼자서 벌어서 자식뒤바라지에, 병시중까지 하시면서 지금까지 가장으로 살고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는 병원에 다니시고, 형편도 넉넉하지 않아 열심히 굴을 까야하신단다. 오늘도 새벽 1시부터 나와서 작업을 했는데도 15킬로도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연세를 여쭈어보니 곧 여든이라고 하신다(아직도 작업장에서 굴을 까고 계실까?)


새벽 1시, 벽이라고 하기엔 한밤중인 시간. 홀로 작업장에 나와 굴을 까셨을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은 급하고 제 뜻대로 안 되는 굳은 손 난로에 올려 둔 냄비에 넣었다 뺐다 녹여가며 제대로 허리 한번 피지 못했을 것이다.


'홀로 앉아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조차도 하지 않으셨을까?'


아버지께서 굴이 제철이라며 나에게 사주고 싶어 하듯이, 자식들에게 굴을 보내고 싶은 맘이 없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오늘 깐 에도 자식들의 몫은 없다.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대셔야 하니.


3킬로만 사시려던 아버지께선 여럿이 나눠 먹어야겠다며 10킬로를 달라고 하신다. 마도 집에 돌아가면 왜 이렇게 많이 사 왔냐 어머니 잔소리가 예상이 됐지만,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리지 못했다. 한파답게 굴양식장은 차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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