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지상주의의 그림자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은 도대체 언제까지?
쏟아지는 국민청원에 대통령이 n번방 운영자 및 회원을 전원 수사하라는 지시를 했다. 빠른 대응에 환영한다. 경찰의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범죄 수사나 처벌 과정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제대로 수사가 될지 미지수이다. 엘리트 사회지도층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은폐나 조작이 자행될 것도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의 전설적인 대학 미식축구 감독인 조 퍼터노가 떠오른다. 미식축구에는 문외한이지만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한 미국이란 나라의 엄정하고 단호한 대응에 놀랐기 때문에 인상 깊은 사건이었다. 조 퍼터노는 60여년간 펜스테이트에서 미식축구를 지도하면서 대학 미식축구 역사상 최다승을 기록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조 퍼터노가 아동 성폭행을 한건가 싶은데, 이야기는 더 남아있다. 퍼터노와 일했던 제리 샌더스키라는 부코치가 15년 동안 아동 성폭행을 저질렀는데, 퍼터노는 이를 알고도 대학 본부에 전달만 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학 역시 보고를 받고도 학교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은폐하기에만 급급했다. 샌더스키는 보란 듯이 성추행을 지속했다.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제대로 신고하고 처벌했다면 추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이 대학 본부에 보고된 뒤로 10여년이 흘러 결국 수면 위로 올라왔고, 2009년부터 2년간 검찰과 대배심원 조사 후 샌더스키는 175년형을 선고 받았다. 거의 종신형이나 다름없다. 이 사건을 은폐하였다는 이유로 감독이었던 조 퍼터노 역시 불명예스럽게 해임되었을 뿐 아니라 14년간의 우승기록이 모두 삭제되었고, 그의 동상마저 철거되었다. 펜스테이트 대학 역시 미식축구협회에서 참여를 제한받았으며, 총장을 비롯한 관련된 고위 임원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6천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연수를 받던 5급 공무원 교육생이 다른 여자 교육생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퇴학당한 것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하는 뉴스를 며칠 전 봤다. 본인과 주변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했는데, 너무 과도한 처사가 아니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무사히 직을 수행하고 있는 고위 공무원, 다시 선거판에 나와서 버젓이 선택을 받는 국회의원, 의사, 법조인, 교수, 언론인 등
이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근저에는 성과지상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 온 자리인데, 어떻게 쌓아온 명성인데... 이렇게 쌓아올린 성과를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문화이니, 피해자의 인권 같은 다른 가치들은 그들이 쌓아온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눈감아도 될만한 것이 된다.
그러나 성과주의의 본령인 미국에서도 성범죄에는 단호한 처벌을 단행한다. 혹자는 성범죄자가 아닌 조 퍼터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니냐고 할 것이다. 그의 오랜 업적과 명예를 일순간에무너뜨리기에는 그는 영웅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그의 팬들 사이에서도 그런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오랜 성과주의의 실행 중에 학습하게 된게 아닐까? 성과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쌓은 성과는 모래 위에 쌓은 집처럼 결국엔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간이 되는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반드시 본이 되게끔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것을..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똑바로 지켜볼것이다. 방역 선진국에 머무를 것인지, 진짜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지 중요한 분수령이 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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