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은 누구의 그림일까? 렘브란트? 그 대답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대답이다. 정답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AI 화가 '넥스트 렘브란트'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학습해서 그린 작품이다. 위 그림은 AI가 "하얀 깃 장식과 검은색 옷을 착용한 30~40대 백인 남성을 그리라"는 지시를 받고 렘브란트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렘브란트의 정수가 집약된 작품이니 렘브란트의 것이 맞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겠다.
AI와 메타버스의 세상에서 인간의 모든 것은 패턴화되어 저장된다. 자연 그대로를 재현해낼 수 있다고 하는 양자 컴퓨팅 기술까지 합세하면, 언젠간 우리와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존재를 가상현실 속에 구현해낼 시대가 곧 올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절친, 돌아가신 부모님같은 나의 가까운 사람들부터, 범접할 수 없을 것 같던 유명인, 정치인, 재벌, 등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재현이 너무나 생생하고 다양해서, 우리는 더이상 실물이 그립지 않을 지경이 될 지도 모른다. 이 영생의 공간에서, 우리같은, 혹은 우리보다 더 우리다운 존재가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린 기존 관계의 재생산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발전 마져도 가상 현실에 점점 의존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 Her처럼 인간을 닮은 AI와 우정과 사랑을 쌓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인간의 기본 욕구인 친밀감 소속감을 충족해나갈 수도 있다.
이렇게 가상현실이 실제의 인간을 점점 대체하게 되면 우리는 인간의 존재 의의를 물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어 저장되고 재생산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나의 유전자 분석과 내가 살아갈 환경을 대입해 시뮬레이션 분석을 해서 나의 성장 패턴마져 예측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파악되어진' 실제로서의 나는 존재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은 그저 데이터의 불과한 것일까?
그나마 우리가 AI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고찰하는 (현재까지 유일한) 존재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다 사라지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사라짐은 언제나 허망하다. AI로 구현된 가상현실의 존재들은 이 허망함의 모습을 '학습'하고 '인지'할 지는 모르지만 이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인간이 가진 차별점이 허망함 뿐이라면 이 또한 얼마나 허망한가. '넥스트 렘브란트'의 시대에서 살아갈, '넥스트 인간'의 설 자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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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냥 하지 말라' (by 송길영) 를 읽고 든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