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ET us 일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nter Lieberman Nov 10. 2021

예기치 못한 위로

카포에라 첫 세션에서

https://youtu.be/BLug-Odwu04?t=236

카포에라는 음악과 춤이 함께하는 브라질의 전통 무술이다.


카포에라 클래스에 처음 참석했다. 카포에라는 16세기 아프리카에서 브라질로 끌려 왔던 노예들에 의해 시작된 전통 무술이다. 당시 삼엄했던 식민 통치 아래, 노예들의 무술 연습은 금지되었고, 이들은 춤으로 위장한 무술을 창안해냈는 데, 그것이 카포에라이다. 난 어린시절 즐기던 철권이란 오락실 게임을 통해 그 존재를 처음 알게되었다. 다른 캐릭터들의 경직되고 딱딱해보이는 '각진' 무술에 비해, 카포에라를 구사하는 Eddy라는 게임 캐릭터의 움직임은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분방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던 나는 카포에라를 배우고 싶었고, 대학 시절 1년 정도 도장에 다녔었다 (물론 나의 움직임은 깃털과 거리가 아주 많이 멀다).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요즘, 카포에라가 다시 생각나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마침 사는 곳 근처에 카포에라 세션을 찾았다. 미국에서 카포에라를 배울 수 있다니!


들뜬 마음으로 30분 일찍 세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브라질 출신 세션 리더를 만나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 한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했었다고 했는 데, 놀랍게도 그 대학교는 내가 졸업한 곳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우린 신나서 대화를 나누었고, 그가 교환학생 시절 그 대학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아내의 고향인 이곳으로 이사 오게됐다는 것을 알게었다. 교환학생 후 그는 브라질로, 그 때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4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 후 아내를 따라 이 곳에서 함께 살게됐다고 했다. 브라질에서 온 교환 학생이 한국에서 아내를 만나, 이 곳 미국에서 살게 된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고 노래했는데, 누군가와의 만남은 때론 태풍을 일으켜 우리네 인생을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19세기 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사가지고 돌아오던 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어 일본, 필리핀, 중국을 '강제여행' 후 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문순득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태풍이 지나간 자리, 그와 나는 소소한 동문 모임의 푸른 싹을 피우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세션이 시작되자, 그는 굼뜬 나에게 "빨리빨리"라고 외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맞아 그랬었지. 두유노 PSY,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이 탄생하기 전, 태초에 빨리빨리가 있었다.

오늘 세션엔 8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인종, 나이, 성별, 출신 국가 모두가 각양각색이었다. 동유럽, 중앙아시아, 남미 등지에서 각자의 태풍을 타고 이 곳으로 오게 된 이들. 우린 영어 악센트 조차 서로 너무 달랐다. 신기하게도 오히려 너무 다양하다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국에서 온 김치 악센트의 나도 이들의 사연에 비하면 얼마면 평범할까. 학교 다니다가 학교를 또 다니고, 그리고 학교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들은 아마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 하품을 하다 눈물이 살짝 고일지도 모른다.

가끔 미국인들이 주로 모인 곳에 가면 낯설음을 느낄 때가 있다. 미국 생활 7년 차, 그나마 미국 문화가 한국 문화를 제외한 내가 가장 익숙하고 잘 아는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나 사이엔 보이지 않는 장벽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주류로서의 그들과는 다른 배경의 나를 구분 짓게 되고, 내가 외국인, 아니 외부인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국적에서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악센트로 이야기하는 방랑자의 공간을 만나고 나니, 그냥 나도 인생을 떠도는 한 명의 특별할 것 없는 여행객임이 느껴졌다. 이 특별하지 않음이 나를  안심시키고, 또 위로했다.


아와와웨, 아와와웨, 뜻도 모를, 아마도 포르투갈어 노래 가사에, 서로의 미소로 박자를 맞추면서, 오늘의 세션이 마쳐졌다. 오늘 그들의 존재가 나에게 준 예기치 못한 위로처럼, 그들의 인생 여정 중에도 나의 존재가 아주 조금이나마 잠시간의 위로가 되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일탈 다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