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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Jan 26. 2023

누수의 세계

 딱 1년 전, 명절 즈음이었다. 세입자에게 카톡이 왔다. 여러 장의 사진에는 윗집에서 물이 새어서 천장과 벽이 젖어 있는 모습이 다각도에서 찍혀있었다. 



 한가로이 영화 '크로엘라'를 시청하고 있던 남편과 나와 아들, 아들은 영화가 슬슬 재밌어지는데 관심사가 다른 데로 돌아가버린 부모가 원망스러운 듯했다. 같이 재밌게 좀 봐주지 싶은 눈빛. 하지만 엄마, 아빠 왜 저렇게 심각하지? 의아한 눈빛. 

 나는 누수를 떠올리면 '크루엘라'에 나온 OST  'Call me Cruella'가 BGM으로 들리는 듯하다. 



 그 누수는 시작에 불가했다. 코로나가 심한 추운 겨울날, 701호(윗집)는 누수를 잡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기술자가 코로나를 몰고 올까 봐 걱정을 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이었는데 아무에게나 집을 오픈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물이 새고 있는 601호(우리 집)는 하루가 급했다. 이렇게 줄줄 흐르다 누전이라도 되면 어떻게 할 거며 그렇게 까지 되지 않더라도 우리 세입자들이 매일 물 새는 소리를 똑똑 들어가며 지낸다면 다음 계약에 남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크루엘라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남편은 701호 집주인아줌마와 통화를 했고 몇 번의 통화와 메시지가 오가면서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701호 집주인아줌마는 차분하고 편안한 분이셨다. 일에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701호 세입자가 집 문을 열어주는 시간까지 기다려주시려고 했고 통상 윗집에서 물이 새서 아랫집이 젖고 있을 때는 보일러를 잠가야 하는데 어린아이가 있으니 그 말도 해주시기 어렵다고 했다. 이해관계는 참으로 복잡한 것이다. 701호 아줌마마인들 세입자가 연장계약을 하지 않는 게 두렵지 않겠는가 싶었다. 우리는 601호에 사는 우리 세입자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하며 701호 집주인에게는 계속해서 투쟁 중이었다. 



 전화로 고성이 오갔고 - 701호 아줌마도 고성을 내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남편은 헝분했다 - 일은 더디게 더디게 진행됐다. 701호에서 누수를 잡고 601호에 젖은 천정과 벽을 다시 도배하는데 3주가 걸렸다. 그러는 동안 물이 새지 않는 따뜻한 집에서 지내는 내가 발 뻗기가 미안했다. 601호는 지금은 세를 주었지만 우리 가족의 손때와 애정이 듬뿍 담긴 오래도록 살았던 우리 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 때는 701호에서 한 번도 물이 샌 적이 없었는데 그 이후로도 우린 2번 더 누수의 세계에 들어갔다. 오늘 아침 연락까지 포함하면 3번이고 이로써 1년 동안 누수가 4번 발생했다. 






 몇 번을 거듭한 일은 능숙해지기 마련인데 물이 샌다는 카톡은 맨날 눈앞을 하얗게 만들었다. 오히려 점점 타성에 젖어가는 윗집 아줌마를 상대하느라 중간에서 속을 많이 끓였다. 사실 윗집 때문에 물이 샌다고 해도 윗집은 사는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굳이 내 집에 들어와 땅을 다 파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고 느끼실 만도 했다. 네이버에 뿌려져 있는 누수와 관련된 갈등문제와 그 댓글들을 자세히 읽어봤지만 나는 누구의 책임을 묻고 배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저 누수가 멈췄으면 할 뿐이었다. 



 수많은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들. 우리 집보다 더 오래된 집들은 배관이 괜찮은가? 아무 때나 터지는 배관은 예측도 불가했고 우리 집 배관을 새로 갈아치운다고 한들 윗집에서 새는 누수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오래된 아파트들에 살고 있는 세입자던, 집주인이던 누수에 대한 스트레스로 병원에 누운 사람은 없으려나. 난 조금만 더 하면 누울 것 같은데. 




 세 번째 누수의 세계는 굉장했다. 내가 본 중 최고였다. 방 하나가 천정부터 벽 세면이 다 물에 젖어내렸고 걸레받이까지 썩었다. 세입자의 옷장도 물을 먹어서 썩어버렸다. 이전까지의 누수는 '똑똑' 했다면 이번의 누수는 '콸콸'이었다. 옷장 안에 있는 옷은 버리지 않았는지 세입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었다. 윗집 배관이 터져서 나는 매번 죄송했고 그 배관은 내가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잘못인 게 맞다. 공동주택의 한계를 실감했다.


 그 집에 들어갈 때부터 인테리어를 해주시던 업체 사장님과는 이제 척하면 탁 알아차리시는 관계가 되었는데 세 번째 누수에서 갑자기 701호 집주인이 인테리어 업체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데려온 업체가 공사에 비해 금액을 많이 청구하는 것 같다고 본인이 아시는 곳으로 하겠다고. 할많하않. 



 몇 달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바뀐 업체가 다른 색의 벽지로 방 하나를 다 발랐다는 걸. 그 방의 벽지는 우리 아들이 쓰던 하늘색이었는데 깨끗이 도배된 그곳은 이제 연한 회색의 방이 되어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래서 내가 업체를 바꾸는 게 싫었다. 



 그리고 다시 오늘 아침 카톡. 그때 그 자리에서 다시 물이 샌다는 메시지. 


 아마 우리 세입자는 이 집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거다. 나라도 그럴 거다. 

 윗집 배관을 다 갈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누수의 세계가 열릴지 숨 막힌다. 

 부부의 세계보다 훨씬 첨예한 

 누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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