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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Jan 10. 2023

절박해서 하는 가족여행

 여행 가고 싶다. 

 나는 내가 가진 체력에 비해서는 꽤 많은 여행을 다녔다. 대학 시절 다녀왔던 1달짜리 유럽여행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태국 그러다 중동에 카타르, 아부다비 그리고 어학연수 시절 캐나다인들이 많이 가는 쿠바까지 체제를 넘나드는 여행을 본의 아니게 경험해 왔다. 

 

 결혼 후에도 수많은 여행이 있었다. 남편은 사주를 보진 않았지만 역마가 있음이 분명했다. 신혼 초 두 달쯤 되는 여행을 계획하고 호텔을 잡고 비행기도 모두 끊어놓았는데 내가 입덧이 어마무시한 임신을 하는 바람에 발칸반도 여행이 날아갔다. 그 좌절을 타산지석 삼아 아들 돌 되던 날 우린 베트남 다낭으로 또 여행을 떠났고 아들은 베트남 인터내셔널 병원에서 피를 뽑아야 할 만큼 열이 절절 끄는 커다란 에피소드를 남겼다. (지금은 에피소드라고 부르지만 솔직히 시간이 지나 생각할수록 타국에서의 어린아이의 건강상태의 악화는 등골이 오싹한 일이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여행을 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어머니는 이런 우리를 너무나 한심하게 생각하셨지만 여행은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현실에서 답답함을 너무 많이 느꼈다. 생각만큼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것에서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현모양처는 아니었다. 우리 둘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똑똑해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데는 어설픈 중이었다. 결코 모자라거나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아직 자기 자신을 충분히 다 배우지 못한 채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사춘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카오스를 경험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니까 그러한 혼돈을 충분히 느끼고 그것에 잠기는 것을 이해해 줄 만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무엇보다 우리 아들한테 그런 부모가 될 수는 없었다. 신고 싶지 않은 부모라는 신발에 억지로-아니 어쩌면 어쩌다- 발을 넣었고 무거운 한걸음 한걸음을 움직여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잡음도 갈등도 늘 많았다. 그게 우리가 계속 여행해야 하는 이유였던 것 같다. 현실 도피. 물론 여행 속에서도 갈등은 끊임없었지만.. 


 코로나가 왔다. 현실 도피를 위해 끝도 없이 도전했던 여행이 막혔고 외식도, 외출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어디 한 곳 맘 편히 가기가 힘들어졌다. 우리는 칩거 수준으로 집에 있게 되면서 또 다른 우리 가족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실 초반 두세 달이 지나면서 나는 우리 집 천장이 낮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나를 눌러서 답답함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천정을 높일 수는 없었고 집에 있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왜 안 버리고 있었는지 모를 아기 수준의 장난감들이 1순위였고 

 입지도 않는, 내 출근을 위해 샀던 어여쁘지만 촌스럽고 작아진 옷들이 2순위였다. 

 이상하게 커다란 덩치를 하고 있는 상자들 하며 초등학생 아들이 보지도 않는 이야기 전집까지 덜어내고 덜어냈다. 묘한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물건들을 버리면서 그걸 사던 시절 내 모습, 그걸 사용하던 시절 우리 아이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그 시절에 내가 가진 상처도 보였다. 여행이 탈출구였던 만큼 집은 탈출해야만 하는 곳이었기에 내 기억 속의 집은 스위트홈은 아니었다. 단란한 가정처럼 살기 위해 애쓴 흔적들과 하나도 기쁘지 않았지만 멀쩡한 척 지내던 짠한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들이 조금은 지나갔음에 위로를 삼았다. 조금은 나아진 것으로 하고 괜찮아지기로 했다. 

 이제 우리 집은 비행기를 타는 대신 자동차를 타고 셋만의 새로운 공간을 찾아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내려 맑은 공기를 쐬보거나 깨끗한 호텔방에 들어가 음식을 테이크아웃 해 먹고 티브이를 주야장천 보는 방콕여행도 해봤다. 탈출을 위한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짐을 싸는 방법과 생각보다 없어서 안 되는 물건들(1박 2일이라도 손톱깎기 왜 이렇게 유용한지)을 알게 되었고 타인과 공유할 수 없을 것 같은 여행지에서의 패턴들도 생겼다. 예를 들어 아침식사를 방에서 대충 때우고 씻고 놀다가 잠깐 나가서 이런저런 음식을 소량씩 산 뒤 다시 방에 들어와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식 같은 것. 누군가에겐 그게 무슨 여행이냐 싶은 순간들이 우리의 여행의 방식이 되었다. 



 어느새 코로나가 있지만 없습니다로 살고 있다. 어제 저녁에도 식탁에 각자 노트북을 켜고 마주 앉아 이번해에 어딜 한번 가볼까 검색을 감행했다. 벌써 의견이 안 맞는다. 코로나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그래도 조금은 높아진 집의 천장 밑에서 더욱 확고해진 자신만의 여행스타일로 서로를 설득하며 올해도 여행은 진행 중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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