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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Jan 04. 2023

그럼 이건 어때?

 최근 친한 친구가 둘째를 낳았다. 집에만 갇혀있으려니 너무 답답한 모양이라 둘째도 볼 겸 다른 친구와 함께 놀러 갔다. 둘째를 재우고 겨우 식탁에 둘러앉아서 3명 이상이어야 먹을 수 있는 배달음식을 시켰다. 

곱창전골.


 식탁교제의 주제 1번은 당연 남편이다. 두 친구의 불만은 대체로 이랬다. 

 " 야, 무슨 화장실 휴지가 쓰기만 하면 채워지는 줄 알아. 쌀도 맨날 곳간에서 나는 줄 알아. 내가 주문 안 하면 우리 집엔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

 " 나도 그래. 빨래 한 번을 돌린 적이 없어. 내가 가끔 '오빠~ 우리 집에 빨래하는 사람은 나 혼자야?' 하면 '시간 되는 사람이 하는 거지~.' 그러고 웃어."



 나는 잠자코 그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내 남편은 휴지도 계속 채워 넣고 냉장고 계란과 우유도 떨어지기 전에 주문해 두고 세탁실 세제도 몇 개씩 시켜둔다. 그럼 내 남편은 진짜 최고의 남편인 건가? 이런 논리적 비약에 속아서는 안된다. 내가 말할 차례가 된 것 같았다. 


" 그럼 이건 어때?  세식구 사는데 케첩을 업소용으로 큰 거를 주문하는 거야. 왜? 그게 용량대비 싸니까. 세탁 세제를 잘 사두는데 세제가 매번 바뀌어. 왜? 그때 그때 할인하는 게 다르니까 제일 싼 거를 사는 거야. 우리 집 옷은 맨날 냄새가 바뀌어. "



 잠시 침묵. 그것도 쉽진 않겠다는 위로를 받았다. 

 " 그럼 이건? 냉동실에 내가 안 좋아하는 만두종류랑 피자 6판, 고등어 20마리씩이 들어있는 거야. 홈쇼핑에서 세일을 하는 걸 보다가 그걸 주문해. 냉동실도 작은데 고등어가 20마리씩 들어있어. 심지어 내 아들은 갈치를 좋아해. 고등어를 집에서 잘 굽지도 않아. 내가 그걸 택배를 받아서 냉동고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넣다가 끝도 없어서 진짜. 어머니 갖다 드려!!! 소리 질렀어."


 할인율이 높으면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너무 많이 샀기에 그걸 또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면 나는 지식인의 삶은 어떤 것인지 갈망하게 된다. 비만이 건강에 가장 큰 위험이 되는 사회,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급격히 늘어나는 사회에서 나의 가정은 대체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건지 한심하다.



 그럼에도 다시 둘째를 낳은 친구의 신세한탄이 이어진다. 사실 이건 이기기가 힘들다. 외동을 키우면서 둘째를 낳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나는 아이를 여럿 키우는 집에 대해 늘 존경심을 갖고 있다. 한 명의 존재로도 너무 버거운 나날들인데 갓난쟁이가 나타나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그렇다 쳐도 아침부터 저녁, 심지어 새벽까지의 모든 스케줄을 점령해 버리는 것은 내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다. 

 몇 년에 한 번 뵙는 작은 고모부는 가끔 뵐 때마다 첫인사가 "둘째는?"이다. 근데 왜 애를 둘까지 낳으면 그다음엔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4인가족 형성의 의무라도 내게 있는 것처럼 볼 때 마다 날 위협한다. 


 4인가족을 형성한 내 친구는 주말마다 첫째는 엄마가, 둘째는 아빠가 맡아서 서로 다른 타임테이블을 돌린다고 했다. 첫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엄마와의 단둘만의 시간을 원한다고. 그래서 첫째와 신명 나게 반나절을 밖에서 놀고 들어오면 둘째를 집에서 보고 있던 아빠와 아이를 서로 바꿔서 다시 본다고 했다. 그나마 아기띠를 매고 소파에 앉으면 잠시 졸 수 있어서 그때 눈을 붙인다는데 지금 나보고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정신적으로 피폐 해지는 건 물론이고 내 육신이 그걸 견뎌낼지 모르겠다. 날이 추워져서 한 달도 넘게 골골거리고 있는 나로서.


 


 그렇게 우리 셋의 신세한탄이 돌아가며 이어진다. 그럼에도 식탁에 모여 앉아 잠시나마 서로가 사는 모습을 들을 수 있음이 힐링이다. 

 그렇게 한바탕 입을 턴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다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평소처럼 잘 살아내기로 하는 의식 같은 거다. 서로가 화병에 걸리지 않도록 멘털케어를 해주는 자리. 우리의 서로 다른 고민이 서로를 위로해주는 그런 자리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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