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유현 Jan 03. 2023

가늠의 기준  

 "엄마, 나 늦었다. 갔다 올게."

 저 말에도 짜증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다. 아이가 온순하다. 키우기 쉬운 아이가 없지만 그래도 참 온순하고 마음이 고운 아이를 내가 낳았다. 



 어젯밤 12시까지 수학학원 숙제를 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주에 아이 '소원 들어주기'를 했는데 소원이 일주일 동안 학원을 모두 쉬는 거였다. 이쯤 되면 학원을 도대체 얼마나 다니길래 이게 소원이냐 싶을 수 있지만 나는 그저 우리 동네에서 평범한 수준으로 학원을 보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조금 많은가? 아니다. 아닌 것 같다. 




 일주일 동안 학원을 쉬려고 생각해보니 골치가 아팠다. 진도, 숙제는 학원을 쉰다고 해서 금방 깡충 뛰어넘어갈 수가 없다. 요즘 학원 시스템이 그렇다. 특히 수학학원은 빠지든 말든 그날의 진도와 숙제, 시험까지도 몽땅 보강을 해야 하는 느낌상 종신형을 당한 기분이다. 그래서 아이를 설득하고 어르고 달래고 게임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딱 하루만 그 학원을 빠지기로 했는데 그 후폭풍이 어젯밤 일어났다. 밤 12시까지 숙제를 했지만 두 번의 숙제를 미뤄뒀고 때마침 오늘은 한 달간 배운 내용을 시험으로 보는 날이다. 소화해야 하는 양이 금리가 오른 이 시대의 대출이자 같구나. 



 나의 계획대로 아이가 되지 않을 때, 나는 강경파이다. 나의 계획에 아이가 맞추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더 살아볼수록 나의 기준이 때론 너무 강압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요즘은 기준은 유지하되 그것에 도달하지 못해도 포기해 주기도 한다. 



 사실 어제도 11시가 넘자 내가 초조해졌다. 그냥 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이가 반쯤 우는소리를 내면서도 뭔가 숙제는 해야겠나 보다. 그럼 다시 마음을 먹는다. '그래, 공부 아니고 숙제잖아. 숙제는 해야지.' 요즘은 숙제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간에는 내가 너무 나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학원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시니컬한 성격을 가진지라 밤이 늦어지면 나는 웃음이 안 난다. 이 시간까지는 숙제 다 마치고 가방도 다 싸고 잠자리에 누워야 하는데 이미 그 시간은 넘기고 아이는 자기가 할 일이 얼마큼 남았는지 모르고 천하태평하면서 "엄마, 나 게임 한 판만 하면 안 돼?"라고 물어올 때. 진심으로 뜨거운 화가 올라온다. 지금 하나도 재미없고 너는 왜 니 할 일도 다 가늠하지 못해서 매일 밤 나와 전쟁을 일으키는지 속이 뒤집힌다. 고운 말이 나갈 리가 없고 아이를 달랠 수 있는 마음이 장착되지 않는다. 샤우팅. 샤우팅뿐이다. 



 얼마를 놀고 얼마를 공부하면 훗날 괜찮은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될까? 유치원 때부터 수학학원을 4개씩 다니고 영어학원도 3개쯤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그런 아이들의 수준을 못 따라가는 우리 아이는 공부량이 너무 적은 걸까? 상대적인 기준은 차치하고 절대적인 기준으로라도 아이를 가늠해보고 싶다. 이것이 인류의 평가의 기원인가? 왜 아이를 가늠해보고 싶을까? 



  '아이를 아직 가늠해보지 않아도 돼.'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최종 목적지와 나의 위치가 되도록 명확한 것이 좋다. 최종목적지는 아이의 독립이고 나의 위치는 언제나처럼 아이의 단단한 바닥이 되어주는 것. 샤우팅과 샤우팅의 간격을 조금 더 늘려봐야겠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호캉스 가길 잘했지 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