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싸한 것은 아니다.
최근 지인분이 자녀의 유학에 대해 고민하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 고2, 갑자기 설날에 모여 가족회의를 하다가 뉴질랜드로 유학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마음이 모아졌단다. 그래서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하셨는데 사실 나는 유학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두어 시간 지난 후, 나는 부모의 마음으로 이런 결론에 다 달았다.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고2에 문득 유학을 보내진 않는다. 대학에 안 가도 상관없다고 해도 일반고등학교에 다닌 이상 고3 말에 치러지는 수능시험을 경험하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뒤, 원하는 곳이 생긴다면 유학을 가게 해 준다.'
나라고 아이의 인생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네임드 대학에 갈 나이가 안 돼서 덜할 뿐이지 네임드 학원, 네임드 학군에 조금씩 편승하고 있다. 아닌 척 쿨한 척하면서도 무언가를 가져야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왠지 모르겠다.
지인분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고를 갖고 계신 분이다. 위에 자매도 한국 대학을 보내지 않으셨고 결국에는 영국에서 대학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남들이 다 간 시기에 대학을 간 것도 아니었고 본인이 원하는 때에 유학을 가서 대학을 최근에야 마쳤다. 비교하기 어려운 지점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신 분이라는 것 정도? 그사세다.
내가 존경하는 부분은 적어도 남의 눈치, 부모의 체면을 생각하는 분은 아니시라는 거다. 체면을 생각했다면 고등학교 졸업 후 네임드 대학에 넣는 것에 눈이 뒤집히는 것이 기본이니까.
자식으로 명예를 얻고자 하시는 마음도 없지만 한국 교육에 대한 기대치도 없으셔서 보다 넓은 선택권을 쥐어준 부모이다. 그 신념과 신념을 행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작년에 두 번의 장기해외여행을 다녀오며 생각보다 국내의 교육 환경이 해외의 환경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물론 아이들이 더 많이 뛰어놀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꿋꿋이 펼칠 수 있는 기회가 해외에 더 많다고 느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질을 볼 때 만족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다 달았다.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도 맛있는 음식을 찾기 어려웠고 길거리 버스킹 공연마저 흥으로 즐거운 거지 퀄리티로 볼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영역조차 K-POP이 강세일 수밖에 없는 것도 차라리 이해가 됐다. 그렇게 까지 노래를 연습하고 그렇게 까지 춤을 연습해서 좋은 콘텐츠를 갖고 방송에 나오는 사람조차 많지 않은 것이다. 좋아서 하는 것은 알겠지만 정교함이 없는 다양한 결과물들을 보며 어느덧 높아진 내 눈은 그들과 나의 삶의 목표가 같은 곳에 있지 않음을 실감했다.
"여기서는 네가 생각하는 게 다 맞고 다 옳아. 당당하고 씩씩하게 지내라."
이민을 가서 30년도 더 사신 이모가 내 아이에게 해주신 말씀이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옳으니' 네 생각대로 해라'는 말에 용기도 생겼다. 이곳은 마트에서 캐셔를 하던, 회사에 가서 일을 하던, 변호사가 되던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얼마든지 원하는 공부가 있다면 시작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면 된다고.
나는 행정적으로 더딘 절차와 급하지 않은 사람들의 태도가 한국인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이미 수차례 느낀 후 여행을 간 터라 그들의 유니버스가 이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이 안 되면 내일 하면 되고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해도 되는 것들이 세상엔 많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너는 지금 행복하니?'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었다.
그것은 행복의 기준일까? 지금 행복하면 계속 행복할까? 정신승리 아닌가?
이민을 가신 이모만큼은 아니지만 대학시절부터 정착해서 20년 가까이 그곳에 살고 있는 친척부부도 만났다. 아이 또래가 나와 비슷했기에 가정이 성장주기에서 가장 급격한 경사로 성장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 그에 따라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에 속한다는 것이 이모와의 차이점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백인들은 현상을 유지하고 여유를 즐기는 삶을, 타국인들은 밤낮없이 지극히 자신과 가정을 위해 일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 바퀴를 구르기를 멈추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이민자들은 이곳에 와서 절박함과 성공에 대한 열망, 언어장벽 해소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불태우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다행히 그로 인해 이 나라는 현상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부는 체감하고 있었다. 계층이 없는 사회인 것 같지만 원주민이라서, 영어가 모국어라서, 백인이라서 갖게 되는 우월한 위치는 인생을 사는 태도를 좌우했다. (그리고 원래 그 땅이 갖고 있는 자원들도 한몫한다.)
한국을 탈출하면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을 지킬 수 있고, 원하는 공부를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지상낙원이 펼쳐질까?
장소가 어디든 나 스스로의 맘에 드는 삶을 살고 싶다면 인생의 차원이 정교화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본다. 고로 이번 해 나의 키워드는 '정교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