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극단적인 진단 결과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링크를 타고 성인의 애착유형을 검사해 보았다. 결과는 '거부적 회피 유형'. 내가 회피유형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부적 회피유형은 수평선의 한쪽 제일 끝에 있는 단어처럼 보였다. 물론 이게 꼭 나를 100% 설명해 준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최근 몇 년 지속적으로 힘들어했던 부분, 가까운 정서적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 확인사살을 해준 것 같아서 개운했다. 속상해야 하지만 개운한 이유는 나의 초자아가 나에게 내리는 벌 같은 것이었다.
'네가 그런 식으로 사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거야, 앞으로도 계~~~ 속 그렇게 살아라. '
나는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부분에 대해 최근 5년 사이에 프로토콜을 만들어놓았다. 일단 대체로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그 출발이었고 상대방이 호의에 호의로 다가오는 경우에만 빼꼼 고개를 내밀고 커피 한잔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몇 번을 오프라인 만남을 갖고도 여전히 상대가 호의적인 경우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밝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게 내 안의 두려움 내지는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10년 이상의 시간을 내 곁에 머물러 준 사람들을 만나 나의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힐링 타임이었다. 그런 힐링타임을 아무 하고나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인고의 세월 동안 나의 거침에 상처를 받아도 내 곁에 버텨주었던 사람들과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사람들을 같게 취급할 수 없다고 내 마음이 순서를 정해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작은 일 하나 까지도 명분이나 신뢰가 너무 중요했다. 그런데 세상은 명분으로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도 했고 도덕적 가치를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내가 세워 둔 기준들이 세상 속에서 나를 유리한 위치에 데려다 놓지 않는다는 것을 예전에는 겸허히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나도 유리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대학을 다닐 때 마케팅과 광고심리학에 마음을 한참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고 광고를 보며 감동을 받곤 했다. 그런데 막상 마케팅 전략을 짠다거나 광고의 콘셉트를 짜는 과정을 배우면서는 뭔지 모르게 불편했다. 광고를 보며 진심이 닿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조작된 진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교감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을, 나는 그게 불편하고 거짓 같았다. 내가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경계가 허물어져 내렸다. 그런 식으로 나를 표현하고 어필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을 처리하다가 어떤 지점에서 성과를 올리는 편인데 마케팅의 세계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라면 여기저기서 언제라도 빛날 수 있었다. 사회적 기준, 도덕성, 가치관, 신념의 혼돈을 기반으로 하여 그 세계가 세워졌고 가장 쉽게 허물어졌고 다시 세우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까지는 말할 수 있는 권위가 없다. 다만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세계는 확실히 치명적 약점이었다. 내가 그 세계에 들어가면 최약자가 되기 쉬웠고 그 세계가 내 안에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대학원에서 기호학이라는 학문을 접하면서 내가 찾던 세계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호가 기의와 기표, 기호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호를 사용한 의사소통은 성공할 수 있지만 실패의 가능성을 많이 갖고 있고 실패한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의미작용은 일어난다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많은 의문을 해소시켜 줬다. (여기서 기호는 언어를 포함한다.) 기호에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대입하고 기표와 기의, 그리고 의미작용을 적용했을 때 모든 것들이 알맞은 공식을 찾은 것처럼 답이 나왔다. 그때의 희열이 여전히 남아있다.
한 사람의 언어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때 100%를 전달할 수 없다는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깨달을수록 나는 더 내 말을 찰떡같이 이해해 줄 사람을 찾게 된 것 같다.
어차피 100을 다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역방향으로 나 역시도 당신의 말을 100만큼 이해 못 하겠지만, 100에 가장 가까운 만큼 이해를 할 수 있는 관계가 진짜 소통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거부적 회피유형의 서막이 오른 것 같다.
불안정애착(회피)(거부회피형) : 자기 긍정-타인부정
회피점수 2.33 이상, 불안점수 2.61 미만
나는 가까운 정서적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내는 게 편안하다.
독립심과 자기 충족감을 느끼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남들에게 의지하거나 남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 회피에서 벗어나려는 에너지를 내부의 변화로 연결하자.
2. 운명에 따라 나가자.
도망치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가 결정적 열쇠이다. 후에 벌어지는 일은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자.
3. 피하지 말자.
피하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인생 묘미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4.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지 말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이 먹어가기보다 실패라도 좋으니 무언가를 하는 편이 낫다. 실패했어도 다른 것은 잘 해낼 수 있다. 인생은 자유로운 것이고 선택할 것은 얼마든지 있다.
5. 할 수 없다는 믿음을 버리고 과거를 놓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