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정할 때 나의 첫 번째 기준은 장소가 얼마나 생동감 있는지이다.
손때가 묻은 것은 괜찮지만 깨끗해야 하고 고급스럽진 않아도 되지만 무심함으로 방치되어 있지 않은 숙소. 생각해 보면 인간의 손길이 닿아있는 숙소를 찾는 것이 내 첫 번째 기준이다.
신기하게도 역사가 있는 호텔의 경우, 수많은 호텔리어들이 관리를 함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포근함이 있다. 반면에 신생 호텔들의 경우, 정말 깨끗하고 모두 새것이라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뭐랄까, 분업화된 전문성이 있을지언정 각기 따로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이런 경우 조식을 먹으러 가면 그 문제가 극명히 드러나는데 요즘은 조식뷔페가 붐비지 않는 곳이 없기에 더욱더 확실히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지배인이라는 존재는 이럴 때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시장통처럼 붐비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이 시장통으로 남지 않게 하는 질서와 매너. 그 기준을 지켜내는 것이 오래된 지배인이 해 나가는 일인 것 같다. 누군가는 투숙객의 경험을 위해 일한다면 대부분은 오늘의 할 일을 무사히 마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너무나 꼰데 같지만 반대로 이러한 경험을 주는 곳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어나가 본다.)
작년과 재작년에 지방 여행을 한 번씩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머물었던 숙소들이 가히 비교할 만하다. 한 곳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있었던 오래된 호텔이었고 다른 곳은 그 지방에서 가장 쾌적한 숙소였다. 놀랍게도 가장 쾌적한 숙소에서는 옆 방의 소음 때문에 가장 불쾌한 수면시간을 보냈고 오래된 호텔에서는 투박한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조차 온천수라서 뜻밖의 목욕까지 하는 횡재를 누렸다. 그곳은 이미 선택과 집중으로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것을 투숙객이 누리게 하였고 경제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내려놓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숙박시설업은 노하우가 없이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내는 매력적인 비즈니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이 많이 들어 아무나 그 비즈니스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이 많아도 이 비즈니스에서 강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어쩌면 드라마 속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윤창출만을 목표로 다소 부도덕함과 욕심을 가지고 성공하려고 했던 사람의 패배를 보는 기분처럼 두 호텔의 대조적인 면을 보는 것이 개운했다.
숙소를 정할 때 두 번째 기준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관리하는 사람들도 포함)이 주로 누구인가이다.
후기로 이것을 쉽게 알 수 있고 특별히 에어비엔비나 펜션의 경우 주인의 운영방침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는 투숙객에게 까다로운 이용조건을 요구하는 주인장들이 싫지만은 않다. 그만큼 내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표준이 있다는 뜻이니까.
동시간대에 같이 머무르지는 않지만 서로의 이용방식이 너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그곳을 이용했어야 내가 느낄 때 안전한 숙소이다.
아이가 조금 큰 나로서는 유아들이 많이 오는 숙소는 이제는 되도록 가지 않는다. 커피포트의 다양한 사용용도가 눈에 그려지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비위생적인 순간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시절을 겪어낸 사람으로서 왠지 더 누리고 싶은 여유라는 것이 있다.(그때는 저도 많이 미안했습니다. 다른 투숙객분들께..) 이유식을 데워줄 수 있냐고 물으며 티 스푼으로 이유식을 먹여봤던, 그때 갔던 호텔들은 내게 고된 기억일 뿐이다.
세 번째 기준.
작은 순간마다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 숙소는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숙소는 장소에 애정이 있는 관리자가 없을 때 탄생하는 곳이라고 느껴진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만큼만 이용하고 원하는 만큼만 돈을 내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저가항공이 그런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에겐 굳이 내돈내산으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숙소에 들어간다.
싱가포르에 갔을 때 묵었던 호텔은 값이 나가는 숙소이기도 했지만 유난히 남달랐다. 방을 비울 때마다 나의 물건이 그 방에서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온 내가 머무는 숙소에 나의 검정 머리끈은 화장대 어디 즈음이나 머리맡에 놔지곤 한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분실해서 새로운 머리끈을 소환하기 마련인데. 그곳에서 내 머리끈의 자리는 정확히 정해져서 보관되기 시작했다.
숙소에서는 마실 물을 많이 쟁여둬야 마음이 편한 타입이라 여분이 있어도 물을 더 넣어두는데 어떤 날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물 5병이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은 2병 정도를 주지만 내가 추가로 물을 쟁이는 행태를 파악한 것 같았다. 외국에서 내는 팁이 아깝지 않았던 유일한 숙소였다.
여기저기 놔둔 물건들을 어떤 질서에 맞춰 정리하는 것을 보면서'아, 여기는 꼭 내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섦이 주는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마냥 내가 이 공간이 낯설지 않도록 특히 첫날 자주 정리해 주었다. 빌려 쓰는 공간조차 그 순간만큼은 내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서비스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숙소가 제공하는 소소한 액티비티도 그곳에서의 시간을 기억에 남게 해 주었고 클럽멤버만 보통 이용하게 하는 라운지도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었다. 대단한 먹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쿠키 몇 개에 차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여행지 숙소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번 해에는 유럽의 나라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 벌써부터 숙소들을 검색하고 있다. 일단 비용측면에서 강력한 가격을 마주하니 숙소의 조건들을 충족하는 곳을 선택하긴 그른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타협에 타협을 거쳐서 도달한 그 호텔이 모든 것이 애매모호한 곳이 아니라 득과 실이 명확한 선택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