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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Feb 15. 2023

의식의 흐름

그런데 말입니다.

그 친구가 하는 것들엔 조금씩 자극을 받는다는 겁니다.


나 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짬만 나면 뭐든 배우러 다니는 열정도 그렇고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식단을 SNS에 올려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도 그렇고

문득 자격증을 위해 조용히 공부하고 자격증을 덜컥 손에 쥐는 것도 그렇고

일주일에 3-4번은 운동을 챙겨하는 것도 그렇고

이 모든 걸 수년째 꾸준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참 위대해 보인다.


누군가가 하는 일에 그렇게 자극받은 타입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믿어왔는데

나다움을 지키는 것을 추구하는 인간인데


아마도 나를 흔드는 건 ‘성실함‘ 인 것 같다.


어떤 목표나 결과를 내는 것보다

성실하게 매일 지루한 루틴을 해 나가는 것


내가 누구보다 잘 해냈던 것이었기에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를 다닐 때가 좋았다.

매일 학교에 가는 걸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의 숙제를 하고 주어진 시험을 준비하고 방학을 맞이하고 등록한 학원을 빠지지 않고 버티면서

나에겐 성실함만이 필요했고

성실했기에 그 시간을 똑같이 보낸 성실하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좋은 결과를 냈다.

나의 유니버스는 그렇게 돌아갔고 안정적이었는데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사회에 나가니

무언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갔다.

그때 나도 포기하지 말고 아주 큰 조직에서의

회사생활을 했다면 좀 달라졌을까? 주어진 체계와 시간표 안에서 성실함으로 버티면 되는 그런 자리를 찾았어야 했다.


개성이 강한 조직에서의 업무들이 나를 우주 미아로 만들었다. 시스템을 이해할 때쯤 나는 엄마라는 자리로 돌아갔다.


살림을 병행하며 루틴을 만들고 지켜내는 건 해본 적이 없었다. 하루는 예전보다 더 잘 갔고 몸은 더 피로했다. 그 시간을 쪼개야만 일상적인 성인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나는 차라리 아이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해소하는 나의 유일한 해결책은 예전부터 늘 잠을 자는 거였다.

 어떤 일이 시작되면 그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할 정도로 예민한 나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잠을 자곤 했다. 생각은 꿈으로 이어져서 꿈에서도 시달렸지만 그래도 꿈은 깰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생각은 이어지지만 사고가 멈추는 듯한 느낌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쯔음부터였다. 분명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사고가 멈춰 머리가 하얘지곤 했다.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기력함이었다. 내 삶인데 방관자가 된 것 같은 무기력함.


 원하지 않는 삶을 누가 억지로 나에게 맡겼던가?


나는 책임감을 발휘하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벌린 일이므로 내가 책임지는 거다. 그렇게 삶이 고통과 같은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에게 삶은 참 두근두근 했었는데.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이제 좀 철이 들었구나.’했다. 그런지도 모르지. 그간 너무 철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내가 나를 사랑했던 시절에 만난 친구들과 얼굴 보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지난 30년보다 가장 최근 10년에 더 많은 일이 일어났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정도로 나 자신을 생경하게 느꼈다. 어쩌면 다시 태어난 게 맞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게도 오늘의 나는 괜찮게 지낸다. 지난 수년간이 문제였다는 걸 고백할 수 있다는 데서 내가 괜찮아졌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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