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 가로등이 몇 개 서 있는 아파트 정원은 자칫 쓸쓸해 보일 수 있지만 오늘만은 다르다.
까만 바탕에 팝콘처럼 튀어 오른 벚꽃들이 쓸쓸한 밤을 서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며칠 있으면 비도 올 예정이라서 그런지 밤바람이 세차다. 바람이 불면 벚꽃눈이 회오리처럼 내린다. 바닥에 떨어진 벚꽃들이 길 가 쪽으로 모여 소복해졌다. 폭신해 보이는 꽃길에 우리 강아지가 가서 코로 킁킁하더니 꽃을 잔뜩 먹어본다. 코와 입에 정신없이 붙은 꽃잎마저 사랑스러운 우리 강아지.
한참을 산책하다 대청마루 같은 벤치에 엄마와 나와 강아지가 앉았다. 아빠가 사진을 몰래 한 장 남겨주었다. 무엇도 영원을 바라지는 않는 편인데 이 순간만큼은 영원하길 바라는 행복의 순간이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하게 해주는 것 같다.
행복한 순간 속에 담긴 모든 사람은 마음에 근심이 있다.
나이가 들어 약해지는 부모를 보는 딸의 무력함,
좀 더 자식이 편안하게 살길 바라는데 힘이 부치는 부모의 안타까움,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밝은 우리 강아지.
그런 것들이 모두 비빔밥처럼 뒤섞인 아름다운 봄밤이다. 우리 누구도 서로를 위해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면 안 돼. 우리 다 씩씩하고 건강하게 지금 이만큼만이라도 버텨내야 해. 행복과 괴로움이 너무나 맞닿아 있다. 까딱하면 깨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 가슴을 조여 온다.
혹시나 인생에는 괴로움 총량의 법칙이 있을까?
무난했던 나의 젊은 시절이 폭풍 같은 인생 후반부를 위한 잠깐의 달콤함이 아니었을까 걱정이 드는 마흔 살이다.
내가 늙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가 않은데 부모가 늙는 건 너무나 눈에 띄고
내 인생도 아직 한창 바빠 살뜰히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흐르는 시간이
손 쓸 수 없는 결과를 향해 달려갈까 두렵다.
봄밤에는 동생과 동생의 아이도 함께 했다. 네 살이 된 아이는 놀이터에서 특유의 어린이 말투로 미끄럼틀을 타며 "할머니!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연신 소리를 질렀다.
시원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휘휘 지나가고 모두 기분이 좋았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 덕에 내 아이는 쉴 새 없이 벚꽃 잎을 잡으러 뛰어다니느라 땀이 한 바가지다. 그런데도 손 끝에서 방향을 바꿔버리는 벚꽃 잎 덕에 하나를 못 잡았다.
내가 인생 좀 더 살았다고 또 가서 금방 잡고서는 "우식이 줄게."라고 했더니
"아냐. 엄마 가져. 엄마 소원 빌어." 라며 절대 안 받는다. 자기의 소원만큼 엄마의 소원도 소중한 아이니까. "우식이 벚꽃 잡게 해 주세요. "라고 소원을 빌고 꽃잎을 후~ 날렸다.
하룻밤 사이에 영원하고 싶은 순간이 도대체 몇 개인 건지.
우리는 아파트 정원에서 봄에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