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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Apr 11. 2023

조금의 소란

발렛비 2000원을 아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오늘은 아끼기로 했다.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도 했고

지하 주차장에 가본 적이 없으니 한번 내려가 보자라고 마음먹었다.


근데 이게 웬걸.

주차장 입구도 못 가서부터 줄을 서고 있다.

줄이 두줄이 되었다.

입구는 한 줄로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먼저 온 것 같은데 내 앞으로 검정 큰 카니발이 훅 들어간다.

흐응....


나도 꽤 방어적이었지만 어쨌든 내리막에 들어서면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옆 사람까지 견제하기가 쉽지 않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들어가서

B2는 당연히 만차, B3-B4 만차, 마지막 B5에 가는데 날 막는 사람은 없다.

B5를 빙글빙글 도는데

여기도 자리는 없다. 이중주차의 흔적을 만나기 시작한다.


와. 2000원 그거 싼 거였네.


일찍 왔지만 이젠 시간이 거의 다 됐다. 초조하게 하지만 매서운 눈으로

다시 올라가 발렛을 맡길까 포기할 때쯤 한 자리가 보여서

정말 빛의 속도로 후진을 하여 바로 주차했다.


대학병원은 늘 붐빈다. 안색이 확연히 안 좋은 분들이 눈에 띈다.

부모님 생각도 나고 병이란 것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마주해야 할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운이 좋으면 큰 병원에 입원을 해서 잘 치료를 받을 것이고

찰나에 여러 생각을 한다.


우식이의 간단한 진료를 보러 와서 아주 긴장을 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막상 진료실 앞 의자에 앉으니 괜히 쿵쾅거린다.

화가 나는 마음이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불필요한 쿵쾅거림.



집에서 주부로 여러 해를 살면서

수입이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밖으로 나가 움직이는 것이 다 돈이 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늘도 역시 어쩌면 내가 굳이 불필요한 검사를 하고 싶어서 여기 이 병원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쓰고 우식이를 괴롭히는 채혈검사를 시키고 진료비와 검사료를 잔뜩 내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집에서 최대한 평화롭게 최소한의 일을 만들고 산다면

내 인생은 무탈할까?

최소한의 식비, 최소한의 의복비를 추구하며 최대한 루틴 한 매일의 삶을 산다면

내 삶은 더 나을까?


최근 매일 일정이 생기면서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드는 생각은

(물론 하루하루 소비하는 돈이 조금은 더 늘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사는 맛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편은 건강검진이 싫다고 했다.

겉보기에 건강한데 검사를 해서 이것저것 안 좋은 것이 나오면 어떡하냐고.

모르고 싶다고.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지금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지.

내 앞에 앉은 은행 직원이 적금을 만들면서 숫자 말고도 왜 이렇게 많은 타자를 치고 계신 건지.

무엇을 적어 넣고 계신 건지.


부동산 갭투자도, 주식투자도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요리 교실도, 언어 공부도, 대학원을 가는 것도

긁어 부스럼일까 괜히 돈만 내버릴까 싶어

무엇하나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는 마음으로

지내오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의 소란을 일으켜서 무언가 배우고 싶다. 어쩌면 금전적 이득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상태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산다고 해도 외부환경은 언제든 문제를 만들어 낼 텐데.

그렇다면 내가 먼저 자극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그 마음이 작년 겨울에도 꿈틀거린 덕에

여기 브런치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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