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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행자 Aug 27. 2019

실력이 늘어간다는 건 시간이 흐른다는 것

#10. 아이의 시간은 부모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7/08/2019

요즘 아이는 숨바꼭질을 제일 좋아한다.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하자고 조를 정도다. 아마 일주일에 열 번은 족히 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빠만. 엄마가 해주는 것까지 합하면 그 수는 예측불가.

아이의 숨는 실력도 점차 늘고 있다. 일 년 전만 해도 겨우 얼굴만 베개 뒤에 숨고선 다 숨었다며 자신이 다 안 보이는 줄 믿었었는데,

6개월 전만 해도 어딘가에 숨어 놓고선 조금만 인기척을 줘도 아빠를 부르며 뛰쳐나오거나 웃느라 제대로 숨지를 못했었는데 이제는 제법 그럴듯하게 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

물론 아직은 사진에서처럼 발을 꼭 보여준다거나, 우당탕 소리를 낸다거나, 아니면 숨고 나서도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에 찾기가 너무나 쉽지만 그래도 이젠 제법 숨고 찾고 찾아지고의 긴장감을 즐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사실 숨바꼭질에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는데서 나오는 행복감과 분리불안의 해결, 들킬까 긴장하며 느끼는 스릴과 들켰을 때 놀라며 생기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등의 행복 호르몬 형성, 또 술래가 되어 찾을 때 갖게 되는 성취감까지.

두뇌를 잔뜩 자극시켜주는 이 놀이는 공간지각 능력에서부터 방향감각, 순발력, 관찰력, 사회성, 애착관계 형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도움을 주는 단순한 놀이를 뛰어넘는 종합 선물세트인 셈이다.

그리고 엄청난 게 하나 더 있다. 심지어 어른인 나까지 정말 재미있다는 점! 이 시간은 아이와 함께 하며 순수하게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솔직히 아이와 하는 대다수의 놀이가 내가 '해주는' 놀이이지만, 숨바꼭질이야 말로 정말 쉽게 '함께 즐기는' 놀이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숨바꼭질. 많이 하자. 자주 하자. 기왕 하는 거 즐겁게 재밌게 하자.

언젠가 아이가 지금보다 더 크면 정말 깜쪽같이 숨을 날이 오겠지. 그땐 지금보다 더 재미있겠다. 그리고 그거보다 더 크면 아마 더 이상 숨바꼭질 같은 놀이는 하지 않게 되겠지. 그 후에는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눈 깜빡하니 3년이 지났다.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간다. 그리고 시간은 함께 흘러간다. 자칫하면 그 놀라운 과정들을 다 놓쳐버린다.

박명수의 말대로 늦었다고 생각되었을 땐, 정말 늦은 거다. 그렇기에 지금 움직여야 한다. 그보다 더 늦어서 더 큰 희생을 치르기 전에. 어쩌면 가족과의 시간은 어떠한 희생이 따라도 지키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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