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나무가 되어줄게
#12.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는 아이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누군가는 자신의 부족함에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하며 너무나 많은 시간을 그저 그렇게 흘려버린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명의 인격체에게 절대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부족한 점 투성이인 인간이 아무런 노력 없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 명의 생명체를 책임진다는 일에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는 날 신뢰하며 절대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거다. 하물며 세상에 치여 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한 나에게 무한한 사랑까지 허락해 주는 그런 존재로.
얼마 전, 몸도 마음도 고갈되고 지쳐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눈이 안 떠진 것도 아닌데, 일을 못 갈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집에 있고 싶었다.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그저 마음 편하게 하루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휴가를 가졌다.
한숨 더 잘까 싶다가 아까운 마음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조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아이가 깨는 소리가 들린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일어나자마자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듯 엄마에게 땡깡을 부리던 아이는 날 보곤 무작정 온몸을 내던져 품으로 뛰어든다.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 마냥.
주 6일 근무에 아침 시간을 거의 함께 보낼 수 없던 아빠를 아침에 마주하게 되었다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 아이에겐 마냥 행복하고 기쁜 일이었나 보다. 밥도 잘 먹고, 옷도 잘 갈아입고, 머리도 잘하고. 아빠가 데리러 오겠다고 했더니 유치원도 기꺼이 즐겁게 간다. 그렇게 난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저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이 날을 돌이켜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니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내가 뭐라고 저렇게 아이의 하루가 좌지우지 된다는 말인가. 그 사랑의 정도를 감히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피부로 느끼게 해 주시기 위해 이런 일을 허락하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아이의 존재로 인해 자존감이 다시금 높이 치솟는다. 부모의 사랑이 조건 없이 무한하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아이의 사랑이야 말로 정말 그런 게 아닐까. 그러니 육아가 힘들어도 아이를 가지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존재로 인해 내가 위대해지니까. 몰랐던 내 사랑의 크기를 발견하게 되니까. 아이는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그 엄청난 사랑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하니까.
이런 고마운 존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이런 걸 고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거야말로 배신 중에 상배신이다. 알면서도 또다시 배신을 하곤 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놓으면 안 된다.
아이에게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자리에 머물며 나의 모든 것을 말 그대로 아낌없이 내어주는 그런 존재. 언제든 돌아보고 위로가 필요할 때면 진심과 전심으로 그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
거기엔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다. 그렇지만 확신이 든다. 다 내어주게 되어도 기쁠 것이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아이가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