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만 해주다 나를 잃어버렸다
김 과장이 또 나를 휴게실로 불렀다. " ○○, 잠깐만. 들어줄래요?" 세 번째였다. 이번 주에만. 김 과장의 하소연이 시작됐다. "팀장이 진짜 답이 없어요. 오늘도 회의 때 제 말은 안 듣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장님 말이 안 들린 게 아니라, 과장님이 준비를 안 해오셨잖아요.'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달랐다. "힘드시겠어요." "맞죠? 제가 이상한 거 아니죠?" '이상하진 않은데, 과장님도 문제가 좀 있긴 하죠.'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과장님 말씀이 맞으세요." 김 과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셨다. "역시 철연 씨는 이해를 잘해줘요."
나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다 판단하고 있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고, 뭐가 문제인지. 하지만 그걸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의견을 말하면 갈등이 생기니까. 분위기가 나빠지니까. 나를 안 좋게 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안전한 공감'을. "맞아요." "그렇네요." "이해해요." "힘드시겠어요." 이 말들은 안전했다. 누구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박 대리가 점심시간에 말했다. "팀장이 진짜 꼰대예요. 맨날 '나 때는 말이야' 이러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팀장님 말씀도 일리는 있는데. 박 대리가 좀 성급한 면이 있긴 하지.' 하지만 말했다. "그러게요. 답답하시죠." 박 대리가 시원하게 웃었다. "그치? ○○ 쌤은 내 마음을 알아줘."
이주임이 화장실에서 말했다. "○○ 쌤 요즘 너무 건방지지 않아요? 신입 주제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쌤이 건방진 게 아니라 당당한 거 같은데. 이주임이 좀 예민하신 거 아닐까.' 하지만 말했다. "음... 그런 면도 있네요." 이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역시 ○○ 쌤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모두의 편이었다. 김 과장 편, 박 대리 편, 이주임 편. 심지어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 모두의 편이었다. 어떻게? 간단하다. 누구에게든 "맞아요"라고 말하면 된다. 김 과장이 팀장 욕하면 "맞아요", 팀장이 김 과장 욕하면 "맞아요." 박 대리가 신입 욕하면 "맞아요", 신입이 박 대리 욕하면 "맞아요." 나는 거울이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반응을 그대로 비춰주는.
사람들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다. 화나면 나한테 와서 화풀이했고, 짜증 나면 나한테 와서 푸념했고, 서운하면 나한테 와서 하소연했다. 나는 다 받아줬다. 듣고, 공감하고, "맞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후련해하며 떠났다. "○○ 쌤한테 얘기하니까 속이 시원하네요." 나는? 나는 더 무거워졌다. 남들의 감정을 받아주느라, 내 감정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었다.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왔다. 퇴근하고 집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졌다.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 뭘 했지?' 김 과장 하소연 들어주고, 박 대리 푸념 들어주고, 이주임 뒷담화 들어주고. 그리고... 나는? 나는 뭘 했지? 나는 오늘 뭘 생각했지? 뭘 느꼈지? 뭘 원했지? 답이 안 나왔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나를 보며 물었다. "너는 뭘 좋아해?" ... "너는 뭘 싫어해?" ... "너는 어떤 사람이야?" ... 대답이 없었다. 아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8년 동안 나는 남의 감정만 받아주느라, 정작 내 감정은 돌보지 않았다. 남들이 화나면 같이 화내주고, 남들이 슬프면 같이 슬퍼해주고, 남들이 기쁘면 같이 기뻐해주고. 그러다 보니 진짜 내 감정이 뭔지 몰랐다. 더 무서운 건, 내가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껍데기만 남고 속은 비어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심 깊은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나는 이해심이 깊은 게 아니었다. 그냥 나를 버린 것뿐이었다.
내 생각을 버리고, 내 감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버리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남의 감정을 채워 넣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 나한테 물어본다면? 너는 어떤 사람이야?'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저는... 이해심 깊은 사람이에요." 그게 다인가? "저는... 남의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이에요." 그게 전부인가? 나는 남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찾아왔다. 하소연하고, 푸념하고, 뒷담화하고. 나는 여전히 들어줬다. "맞아요", "그렇네요",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이상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내가 도움이 되고 있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그냥 공허했다. 마치 영혼 없는 로봇처럼 작동하는 느낌. 입으로는 공감하는데, 가슴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 혼자 밥을 먹었다. 평소에는 늘 누군가와 같이 먹었는데, 그날은 우연히 혼자였다. 조용히 밥을 먹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 밥이 맛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네.' 그냥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씹고, 삼키고 있었다. 맛있는지, 짜지는 않은지, 내 입맛에 맞는지.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한 적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써보기로 했다.
'나는' 펜을 들었는데, 손이 멈췄다. '나는... 뭐?'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한 줄을 썼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 문장을 보며 허탈했다. 이게 내 전부인가? 나를 정의하는 게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뿐인가?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뭘 원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인가? 답이 없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나를 관찰했다. '나는 지금 뭘 느끼고 있지?' 김 과장이 또 하소연할 때, 나는 속으로 물었다. '나는 지금 정말로 공감하고 있나? 아니면 그냥 공감하는 척하고 있나?' 답은 후자였다. 나는 공감하는 게 아니라, 공감하는 척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게 안전하니까. 박 대리가 또 푸념할 때, 나는 속으로 물었다. '나는 정말 박 대리 말이 맞다고 생각하나?' 아니었다. 나는 박 대리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맞아요"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편하니까. 이주임이 또 뒷담화할 때, 나는 속으로 물었다. '나는 정말 ○○ 쌤이 건방지다고 생각하나?'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 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면도 있네요"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쉬우니까.
나는 깨달았다. 나는 8년 동안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을. 내 진짜 생각, 내 진짜 감정을 숨기고,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왔다는 것을.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진짜 나가 뭔지 모르겠었다.
어느 날 저녁, 산책을 하다가 멈춰 섰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을이 졌다. '예쁘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어? 이게 내 생각이네?' 누가 "노을 예쁘다"고 말해서 따라 한 게 아니라, 내가 노을을 보고 내가 예쁘다고 느낀 거였다. 작은 것이었지만, 그게 내 목소리였다. 그날부터 나는 연습하기 시작했다. 작은 것부터.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아무거나요" 대신 "저는 김치찌개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실 때, 진짜 맛이 어떤지 느껴봤다. '달다', '쓰다', '향이 좋다'. 퇴근길에 듣고 싶은 음악을 틀었다. 남들이 좋다는 노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노래.
쉽지 않았다. 30년 넘게 나를 버리고 살았는데, 갑자기 나를 찾는 게 어색했다.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목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김 과장이 또 하소연할 때, 나는 처음으로 말했다. "죄송한데, 지금은 제 일 마무리해야 해서요." 박 대리가 또 푸념할 때, 나는 다르게 대답했다.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경계를 긋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멀어졌다. 김 과장은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처음엔 서운했다. '역시 나를 쓰레기통으로만 본 거구나.'
하지만 동시에 홀가분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진짜 나를 보여주니까, 진짜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동료는 말했다. "○○ 쌤, 요즘 달라 보여요. 뭔가 더 편해 보이고, 진짜 같아요." '진짜 같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 나는 이제 진짜다.
아직도 가끔 헷갈린다. '내 생각이 뭐지? 내 감정이 뭐지?' 30년 넘게 나를 버리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내 감정이 있고, 내 생각이 있고, 내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나에게 물었다. "너는 오늘 뭘 하고 싶어?" 그리고 대답했다. "나는 오늘 일 끝나고 혼자 영화 보고 싶어." 작은 대답이었지만, 내 대답이었다.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다.